[13]러일전쟁의 배경과 일본의 야심

문영숙의 꼭 알아야 할 항일독립운동가 최재형
[13]러일전쟁의 배경과 일본의 야심
  • 입력 : 2022. 03.16(수) 15:31
  • 가금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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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영숙의 꼭 알아야 할 항일독립운동가 최재형/CTN]
영일동맹과 수에즈 운하
발틱함대의 몰락

최재형은 러일 전쟁에 참가했다. 그러나 최재형도 일본이 승리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최재형은 러일전쟁을 통해 일본의 야심을 제대로 파악하게 되었다.

19세기 말, 러시아는 실질적으로 만주에 동청철도를 건설하여 한반도 쪽으로 남하하고 있었고, 한국의 마산을 조차지로 만들기 위해, 한국 정부에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일본은 반대로 북진(北進)을 추진하면서, 한국 점령을 시작으로 만주까지 진출하려는 야심을 품고 있었다.

일본은 청일전쟁의 승리로 한국에서 청의 세력을 축출하고 독자적으로 개입하고 싶었지만, 러시아의 도전이 예상되어 긴장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본은 '만주는 러시아가 차지하고, 한국은 일본이 점령한다'는 기본 입장을 러시아에 표명하였다.

일본 정부는 1903년 8월 이후, 만주 문제와 한국 문제의 해결을 위해 러시아와 협상을 계속했다. 그러나 러시아는 일본이 한국에서의 정치적, 군사적 우월권을 인정하지 않았다. 일본의 의도가 러시아에 의해 방해를 받고 있다고 판단한 일본 정부는 1904년 2월, 러시아와 전쟁을 감행했다. 일본 해군은 뤼순을 공격하고, 육군은 인천 상륙을 통해, 서울을 무력으로 점령했다.

선제 기습 공격을 가한 후에 선전 포고를 하는 야비한 방식이었다. 뒤이어 일본은 청·일 전쟁 때처럼 먼저 한국의 정치 중추부를 무력으로 제압한 다음, 강제적인 동맹 관계를 통해 한국 정부를 전쟁에 끌어들였다.
러·일 전쟁은 일본에게 있어 국가의 명운을 건 운명적인 싸움이었다. 세계 최강의 육군 대국으로 불리는 러시아를 상대로 일본이 승리를 거두리라고 예상하는 국가는 거의 없었다. 일본은 당초부터 무척 힘든 전쟁이 될 것이라 예상하였고, 엄청난 전비가 필요하다는 사실도 인식하고 있었다.

이로 인해 일본은 미국과 동맹국인 영국에서 외국채를 모집하여 전쟁에 대비하였고, 또 개전 초기에 이미 가네코 겐타로(金子堅太郞)를 미국에 파견해, 테오도르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강화의 중재를 타진해 놓고 있었다.

러시아는 당시 국내 반전운동 등의 영향으로 충분히 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전쟁은 일본이 의도한 대로 일본에게 유리하게 전개되었다.

일본 육군은 개전 약 11개월 만에 3개 사단 병력의 손실을 감수하면서, 뤼순을 공략하는 데 성공하였고, 더불어 뤼순의 러시아 태평양 함대를 제압할 수 있었다. 이어서 1905년 3월, 일본은 남만주에서 승기를 잡는 데 성공하였다.

또, 5월에 일본 해군은 도고 헤이하치로(東鄕平八郞)가 지휘하는 연합 함대가 유럽에서부터 지구의 반을 돌아온 러시아의 발틱함대를 맞이하여 전멸시킴으로써 사실상 승리를 거두었다(일본에서는 일본해 해전이라고 부른다. 위치는 현해탄을 지나 부산과 울산 사이의 동해안에서 전투가 벌어졌다).

필자가 쓴 <독립운동가 최재형>에서 필자는 영일동맹과 러일전쟁 부분을 이렇게 썼다.

영국을 긴장시킨 사건은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완성이었다. 러시아의 서쪽 끝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동쪽 끝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이용하면 뱃길로 지구 반 바퀴를 도는 거리와 시간을, 일주일로 단축시킬 수 있었다.

시베리아 횡단철도는 러시아의 대동맥 역할을 하게 되었고, 러시아가 동북아시아의 새로운 세력으로 성장하자, 영국은 이를 두려워 해 일본과 영일동맹을 맺어 러시아를 견제한 것이다.

이러한 사정으로 당시 유럽이나 러시아에서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떨던 발틱함대가, 결국 영일동맹의 영향으로 일본의 함포에 여지없이 무너지게 되었다.

필자가 쓴 같은 책 <독립운동가 최재형>에서 발틱함대 부분을 살펴보자.

발틱함대는 러시아의 표트르 대제가 만든 함대로 세계 최강의 함대였다. 발틱함대의 행로는 대서양에서 수에즈 운하를 통과해 인도양으로 빠져나와, 빠르게 대한해협에 도착하여, 일본 함대를 단숨에 무찌를 생각이었다. 그러나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발틱함대는 영국의 코앞에서 고기잡이 어선을 군함으로 오인하여 공격하고 말았다.

가뜩이나 사이가 좋지 않던 영국과 러시아는, 적대적인 관계로 급속하게 나빠졌고, 당시 수에즈 운하를 관할하던 영국은, 러시아의 발틱함대가 수에즈 운하를 통과할 수 없게 막았다.

결국 전투함과 보급함, 병원선등 38척이나 되는 발틱함대는, 남아프리카의 희망봉을 돌아, 인도양을 거쳐야 했다, 동남아를 거쳐 대한해협까지 오는 동안에도, 영국의 식민지인 나라에는 상륙허가를 받지 못했다.

또한 식량이나 유류보급도 받지 못한 채, 약 6개월에 걸친 기나 긴 항해로 모두 지쳐버렸다. 결국 1905년 5월 26일에야 대한해협에 당도했지만, 이때의 발틱함대는 러시아를 떠날 때의 위용은 간데없고, 마치 비에 젖은 가랑잎 같았다.

이렇듯 러일전쟁은 영국과 일본이 맺은 영일동맹의 결과가 일본에게는 승리를, 러시아에게는 패배를 안겨주었다.

참고서적: 필자의 소설 <독립운동가 최재형>
가금현 기자 ggh70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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