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천년의 역사 홍성군, 그 축제의 장으로 떠나보자
가금현 기자 ggh7000@hanmail.net
2018년 09월 12일(수) 11:19
홍성 용봉산
[기획/ctn]충남도청의 중심 내포시대가 활짝 열리면서 충남의 중심이 된 홍성군.

홍성군 하면 역사의 인물들이 먼저 떠오른다.

해마다 펼쳐지는 홍성역사인물축제
올해 그 화려한 막은 9월 14일부터 16일까지 홍주읍성 일원에서 개최되며, 올해 슬로건은 '홍주 1000년! 성삼문 600년! 역사의 시작!'이다.

홍성군에 어떤 역사적인 인물이 있는지 보자.

△최영
고려의 명장ㆍ재상. 본관은 동주(東州). 평장사 유청(惟淸)의 5세손, 사헌규정 원직(元直)의 아들로 홍주 적동(현재 홍성 홍북 노은리)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1352년(공민왕1)에 조일신(趙日新)의 난을 평정했고, 1358년 배 400척으로 오예포(吾乂浦)에 침입한 왜구를 복병을 이용하여 격파했다. 1359년 홍건적 4만 명을 무찌르고, 1361년에 홍건적 10만이 다시 침입하자 이를 격퇴했다.
1367년(우왕2)왜구가 연산 개태사에 침입하자, 늙은 몸으로 출정하기를 자원하여 홍산에서 왜구를 크게 무찔러 그 공으로 철원 부원군이 됐으며, 1378년 왜구가 승천부에 침입하자, 이성계ㆍ양백연 등과 함께 무찔렀다. 1384년 문자시중을 거쳐 판문하부사가 됐다.
1388년 요동을 정벌하게 했으나 이성계가 조민수를 달래어 위화도에서 회군함으로써 요동정벌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그는 이성계에게 잡혀 고봉현(현 고양)으로 귀양 갔고, 다시 합포(지금의 마산)ㆍ충주로 옮겼다가 개경으로 압송돼 순군옥에 갇힌 뒤 그해 12월에 참수(斬首)됐다.
이성계는 새 왕조를 세우고 나서 6년 만에 무민(武愍)이라는 시호를 내려 넋을 위로했다.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대자동에 있는 그의 무덤은 풀이 나지 않는다고 하여 ‘적분(赤墳)’으로 불린다.

△성삼문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 죽은 사육신 가운데 한 사람으로 조선왕조의 대표적인 절신(節臣)으로 꼽힌다.
본관은 창녕. 자는 근보(槿甫)ㆍ눌옹(訥翁), 호는 매죽헌(梅竹軒). 시호는 충문(忠文) 아버지는 도총관 승(勝)이다. 외가인 홍주(洪州) 노은골에서 출생할 때 하늘에서 '낳았느냐'하고 묻는 소리가 3번 들려서 삼문(三問)이라 이름 지었다는 일화가 전한다.

1435년(세종 17) 생원시에 합격하고, 1438년에 식년시에 응시, 급제했다. 집현전학사로 뽑힌 뒤 세종의 명으로 훈민정음을 만들 때 정인지ㆍ신숙주ㆍ최항ㆍ박팽 년ㆍ이개(李塏) 등과 더불어 이를 도왔다. 특히 신숙주와 함께 당시 요동에 귀양 와 있던 명나라의 한림학사 황찬(黃瓚)에게 13차례나 왕래하며 정확한 음운(音韻) 을 배워오고, 명나라 사신을 따라 명나라에 가서 음운과 교장(敎場)의 제도를 연구해오는 등 1446년 훈민정음 반포에 큰 공헌을 했다.

1455년 수양대군이 어린 조카인 단종의 왕위를 빼앗자 성삼문은 아버지 성승과 이개, 하위지, 유응부, 박팽년, 유성원 등과 함께 단종을 복위시키려다 실패하여 능 지처형(凌遲處刑)을 당했고 집안도 멸문(滅門)의 참화를 당했다.
1954년 홍성 고적현창회에서 제단을 보수하고, 노은단수호위원회에서 음력 9월 16일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한용운
만해 한용운은 1879년(고종16) 8월 29일 결성면 성곡리 박철동 잠방굴에서 청주한씨 서원군 한명보의 후손인 부친 한응준과 모친 온양방씨 의 차남으로 출생했다. 어릴 때 이름은 유천(裕天), 본명은 정옥(貞玉), 불명은 용운(龍雲), 법호는 만해 (卍海, 혹은 萬海)라 한다. 6세부터 성곡리의 서당골에서 한학을 배웠으며 9세에 문리를 통달 신동이라 불리었다.
1911년 조선총독부가 조선사찰령을 공포해 우리나라의 불교를 일본불교에 예속시키고 사찰에 대한 권리를 장악하려 하자 반대운동을 벌였으며, '조선불교유신 론'을 집필하여 불교계의 개혁을 주도하였다. 1919년 민족대표 33인의 한사람으로 독립선언을 하는데 주동적 역할을 하였고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후 경찰에 체포 되어 서대문 형무소 수감 중 '독립의 서(獨立의 書)'를 썼다.

1926년 88편으로 된 '님의침묵' 시집을 발간했고 지조가 곧고 절개가 있어 일제와 추호의 타협도 하지 않았으며 끝까지 조국의 독립을 위하여 몸 바치다가 1944년 6월 29일 서울 성북동 심우장에서 별세했다. 홍성군은 결성면 성곡리 한용운 생가지에 생가 복원에 이어 사당을 건립했다.

△김좌진
백야 김좌진 장군은 1889년(고종26) 선원 김상용의 12세손인 형규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18세 때 호명학교를 설립해 인재양성과 신학문을 교육하기도 했다. 광복단 사건으로 3년간 옥 고를 겪은 후 1917년 만주로 건너가 3·1운동의 전주곡이 되는 무오독립선언서에 39명의 민족지도자와 함께 서명했다.
1919년 북로군정서를 조직하고 총령관이 되고, 사관연성소를 설치해 독립군을 양성했으며, 31세가 되던 해에 시베리아로 출전 중이던 일본군 3,000여 명을 화룡현 청산리로 유인해 1,200여 명을 전상자로 만든 7일 간의 전투가 바로 대한민국 독립운동사상 최대의 금자탑을 이룬 1920년 10월 21일에 있었 던 청산리 전투이다.
홍성군은 1991년부터 김좌진 장군 생가 사업을 추진했으며, 매년 10월 김좌진 장군의 청산리 전투 전승기념축제를 개최하고 있다.

△이응노
고암 이응노는 1904년 홍성에서 태어나 1989년 파리에서 생을 마칠 때까지 온 삶을 그림으로 채운 화가다.

21세인 1924년에 ‘조선미술전람회’에 처음 입선한 이후 일제시대에 이 전람회에서 여러차례 수상했다.

일본 유학을 거쳐 해방 후에는 새로 개설된 홍익대학교 미술 대학 교수를 지냈고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50대에 프랑스 파리로 건너갔다.
고암 이응노는 한국의 전통 서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을 선보여 유럽 예술계에서 큰 주목을 받았으며 학교를 세우고 서구 젊은이들에게 동양 예술을 가르쳤다.
1960년대에 '동백림 사건'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러야했고, 다시는 그리던 고국에 돌아오지 못했다.

이제는 홍성군 8경으로 떠나보자.

△용봉산
홍성에서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는 홍성여행의 필수 코스인 용봉산은 산세가 용의형상과 봉황의 머리를 닮은데에서 유래하였으며, 또한 8개의 산봉우리로 형색을 갖췄다고 하여 팔봉산이라고도 한다.
홍성군 홍북면과 예산군 덕산면 상하리에 걸쳐있으며 해발 381m로 그리 크거나 험하지 않지만, 수려한 자연경관과 산 전체가 바위산이라 병풍바위, 장군바위 등 전설을 간직한 기암괴석이 많아 '제2의 금강산'으로 불린다.

△홍주성과 여하정
서해의 관문이자 홍주목의 치소를 둘러쌓은 홍주성은 1,772m에 달했으나 현재는 남쪽의 810m 성벽만 남아있다.
홍주목의 36동에 이르렀던 관아 건물이 일제에 의해 훼손돼 조양문, 홍주아문, 안회당, 여하정만 남아 있다.
조선 초기 왜구로부터 방어하기 위해서 석성으로 쌓은 이후 몇 차례의 중축을 거쳤고, 1870년 홍주목사 한응필에 의해 대대적으로 개축됐다.
임진왜란, 이몽학의 난, 동학농민항쟁, 천주교박해 등 산 역사의 현장이며 을사늑약 체결에 반대한 민종식, 이세영 등이 홍주의병을 이끌고 전투를 벌인 곳이다.

△만해 한용운 생가
독립운동가이자 승려이며 시인인 만해 한용운 선생이 태어난 곳이다.
1919년 3.1운동 민족대표 33인의 한사람으로서 독립선언서의 공약 3장을 작성하였으며 1926년에는 시집 '님의 침묵'을 출간 저항문학에 앞장섰다.
생가 입구에는 만해 선생의 생애를 알 수 있는 만해문학체험관이 있다.

△그림이 있는 정원
내 집의 정원과도 같은 편안하고 안락함을 전하는 곳이 되고자 '정원'이 되었고, 자연과 예술이 함께하는 공간이 되고자 '그림'이 된 그림이 있는 정원은 89,449m²의 대지위에 소나무를 중심으로 목본류 460여종, 초본류 870여종 등 총 1330여종을 보유하게 되어 2005년에 문을 열게 된 수목원이다.

△오서산

은빛물결의 억새풀이 눈부신 오서산은 내포지역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정상에 서면 서해안 일대 풍경이 시원하게 펼쳐지며, 멀리 바다에서도 보여 서해의 등대 내지 나침반이라고도 불린다.
충남 서북부 최고봉(791m)으로 홍성, 보령, 청양에 걸쳐 있다. 정상에서 북쪽의 740m봉으로 이어지는 주능선 곳곳에 억새밭이 산재해 석양이 물들 때 더욱 환상적이다.

△남당항
광활하게 펼쳐진 천수만과 어우러진 수산물의 보고로 대하, 우럭, 새조개, 꽃게, 새우 등 사시사철 싱싱한 수산물이 있고, 주변에는 많은 횟집이 산재해 있어 홍성은 몰라도 남당항이 있는 남당리는 알 정도로 대표적인 관광명소이다. 특히 천수만 최고 별미인 새조개가 유명해 미식가들을 유혹한다.

△김좌진 생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였던 백야 김좌진 장군이 태어나고 성장한 곳이다.
김좌진 장군은 한국 독립투쟁사에서 최고의 전과로 기록되는 청산리 전투를 승리로 이끈 것으로 유명하다. 장군은 이곳에서 15세 때 노비문서를 불사르고 전답을 나눠줬으며, 17세 때는 갈산중고등학교 자리에 호명학교를 세워 신학문을 교육했다.
홍성군은 매년 10월 25일 청산리전투 승전기념일에 맞춰 이곳에서 장군의 숭고한 애국정신을 기리는 추모제를 지내고 있다.

△궁리포구
잔잔하면서 광활하게 펼쳐진 천수만을 앞에 두고 있어 경치가 아름다우며, 갯벌 체험 등을 할 수 있는 체험장이 있어 많은 관광객들이 즐겨 찾고 있는 곳이다.
천수만과 AB방조제, 간월도, 수평선 넘어 안면도가 어울려져 아름다운 일몰을 볼 수 있는 곳이다.

홍성군의 또 다른 매력 죽도와 속동전망대.

△죽도
죽도는 홍성군 서부면 서쪽에 있는 홍성군 유일의 유인도로 섬주위에 대나무가 많이 자생하고 있어 죽도라 불리운다. 죽도는 천수만 내에 위치하고 있는 작고 아름다운 섬으로 낭만과 자연이 그대로 보존된 천혜의 섬이다.
홍성읍 소재지에서 갈산면을 거쳐 서부면 남당리에 도착, 남당항 바로 앞 약 3.7㎞ 지점에 있으며 배를 타고 15분정도 들어가야 하며, 올망졸망한 8개의 섬이 달라붙어 있으며 24가구 70여 명이 사는 유인도로 물이 빠지면 걸어서 돌아볼 수 있다.

△속동전망대

속동전망대는 홍성해안의 명소로 어사포구와 궁리 중간의 임해관광도로변 바닷가에 2005년에 세워졌다.
전망대에 오르면 확트인 천수만이 한눈에 바라보이며 바로 앞에는 '모섬'이라 불리우는 작은섬이 있는데, 홍성군 서부면 상황리 주변 해발고도 120m의 부엉재산이 남쪽 해안으로 자락을 내리면서 서해로 잦아들었다가 갑자기 솟구친 다음 여맥을 다하여 생긴 섬이다.
전망대 옆에는 푸른 해송림이 바다와 어우려져 있어 여행객들이 옹기종기 모여 바닷가 송림의 호젓함을 즐기는가 하면 단체야유회도 이곳에서 종종 볼 수 있는 풍경이다.

홍성군의 유래는 홍성군은 옛 홍주군과 결성군을 합한 군이다.

홍주는 본래 고려의 운주로 995년에 도단련사를 두었고, 1012년에는 지주사로 됐다.
이후 홍주로 개칭됐다.

1358년에 목으로 승격된 후 1368년 지주사로 됐다가 조선시대에는 여러 차례의 변혁을 거쳐 1895년에 군이 됐고, 1914년 옛 결성군을 합쳐 홍성군이 됐다.

결성은 본래 백제의 결기현인데 신라 때 결성으로 고쳐 서림군의 영현이 되고, 고려시대인 1018년 운주에 이속됐다가 1172년에 감무를 뒀다. 우왕 때 왜구의 침입으로 주민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1390년에는 진성을 두고 유민을 정착시켰다.

조선시대 1413년 현감을 뒀다가 1895년 군으로 승격, 1914년 홍주군·결성군 및 보령군의 일부를 통합 홍성군이 됐다.

1941년 홍주면이 홍성읍으로, 1942년 광천면이 읍으로 됐다. 1983년 2월 전국 행정구역 조정에 따라 서산군 고북면 대사리와 결성면 와리를 갈산면에 홍동면 월림·대평·운용리를 광천읍에 결성면 중리를 서부면에 홍북면 내법리, 홍동면 구룡리를 홍성읍에 각각 편입됐다.
2017​년 7월 1일 홍북면이 홍북읍으로 승격되면서 2읍 9개면에서 3읍 8개면(홍성·광천·홍북읍, 갈산·결성·구항·금마·서부·은하·장곡·홍동면)으로 개편됐다.

홍성군은 이제 축제의 장이다.

△홍성역사인물축제
올해 그 화려한 막은 9월 14일부터 16일까지 홍주읍성 일원에서 개최된다.

△홍성남당항대하축제
축제는 8월 31일부터 9월 13일까지며, 먹거리 기간은 8월 31일부터 11월 4일일까지다.
장소는: 충남 홍성군 서부면 남당항 일원에서 열린다.

△광천토굴새우젓·광천김축제
축제 개최일은 10월 19일부터 22일까지 충남 홍성군 광천읍 전통시장 일원에서 개최된다.

△홍성남당항새조개축제는 해마다 1~2월중 충남 홍성군 서부면 남당항 일원에 열리고 있다.
/가금현 기자·한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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