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칼럼]항일독립운동가 최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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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 칼럼]항일독립운동가 최재형
- 가금현 발행인
  • 입력 : 2022. 04.11(월) 14:21
  • 가금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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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 칼럼/CTN] 벚꽃이 활짝 핀 지난 7일 서울국립현충원 현충관에서는 뜻 깊은 행사가 열렸다.

'페치카 최'로 불린 항일 독립운동가 최재형 지사의 추모 102주년 기념과 제3회 최재형 상 시상식이 열렸기 때문이다.

본 필자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취재기자와 함께 이 행사를 취재하게 됐다.

하지만 올해 행사는 지난해와 사뭇 다르다는 것을 분위기에서 느낄 수 있었다.

긴장감이 감도는 가운데 오늘 행사를 주최한 독립운동가최재형기념시업회 문영숙 이사장은 저는 오늘 최재형기념사업회 이사장으로서, 또 순국선열들의 피로 일군 대한민국에서 자유를 누리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최재형 선생의 영전에 부끄러워 머리를 들 수가 없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또 최재형 선생은 조국을 잊은 적이 없건만 조국은 최재형 선생을 두 번이나 버렸다면서 한번은 이념의 장벽에 가려 긴 망각으로 버렸고, 한번은 국립묘지에서 삭제되었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도대체 어떤 문제가 있었기에 이사장이 이토록 분개하는 것일까.
그가 분통을 터트리는 이유는 그의 기념사 내용에 고스란히 녹아있었다.
독립운동가 최재형 지사의 활동 사항에 대해서는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등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최재형 지사는 교육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블라디보스토크에 계동학교를 세워 민족교육에 헌신하는 한편 간도관리사였던 이범윤(李範允)과 연락하여 함께 국권회복을 위해 힘썼으며, 1908년 4월 동의회를 조직한 이후 총재로서 내외에 이 조직을 널리 알리기 위해 『해조신문』에 그 취지서를 게재했고, 함께 한 중심인물은 이범진(李範晉), 이위종(李瑋鍾) 부자와 이범윤 등이었다.

많은 자산의 소유자였으므로 동의회의 조직과 운영, 활동에 드는 비용 대부분을 지출했다. 또 러시아지역에서 한인들의 의병 활동을 지원했고, 1908년 말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발행되는 한국어 민족지 『대동공보』 사장으로서 언론 활동에 관심을 기울이며 동포의 사상을 계몽했다.

그는 1910년 일제의 조선강점 이후에도 계속적으로 독립운동을 전개, 일본에게는 최고의 경계대상이었지만 러시아 연해주지역의 동포들은 자신들의 권익과 조선의 독립을 위해 한인들이 러시아에서 러시아당국의 공식인가를 받은 최초의 권업회(勸業會)를 조직 독립운동단체로 활동했다.
최재형 지사는 '연해주 독립운동의 아버지'라 불릴 정도로 할동하며, 상하이 임시정부 재무총장(장관)을 역임한 고위직 독립운동가 헌신적으로 활동한 인물이다.

그는 일본군이 1920년 4월 4일 밤부터 5일 새벽까지 연해주 지역에서 항일운동세력에 대해 대대적 공격을 가해 왔을 때 김이직, 엄주필, 황경섭(황카피톤) 등의 애국지사들과 함께 일제에 체포돼 총살당했다고 한다.
재판도 없이 말이다.

이렇게 우리나라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독립운동가을 이 나라가 어떻게 했기에 기념사업회 이사장이 분개하는 것일까.

문영숙 이사장의 기념사를 보면 정부는 1962년 최 선생에게 대한민국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고, 1970년 11월 17일 서울국립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최 선생의 허묘를 만들었다.

문제는 유족연금을 받았던 최모씨가 유전자(DNA) 검사에서 허위로 드러나 유족연금 수령 자격이 박탈됐고, 2004년 최 지사의 막내딸 최 엘리자베타가 유족연금 수급자로 국가보훈처에 등록됐으며, 2005년 막내딸이 사망하자 손자 최 발렌틴(2020년 2월 작고)이 이어받았다.

최 발렌틴은 2006년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아 애국지사묘역의 최 지사 허묘에 참배하고 당시 사진까지 남겼다.

하지만 2009년 최 발렌틴이 재차 현충원에 참배하러 갔으나 허묘가 갑자기 멸실되고 빈터만 남은 사실을 확인했다.

최 발렌틴은 2010년 러시아에서 출간한 저서『최재형』에 사진과 함께 이런 충격적인 사연을 실었고, 이런 사실이 최근에야 국내 기념사업회에 전해진 것이다.

이에 문영숙 이사장은 이 과정에서 국립서울현충원과 국가보훈처의 일 처리에 많은 의문이 있다고 지적하면서 기념사업회와 최 선생 후손들은 1970년 11월에 조성돼 적어도 2006년까지 국립서울현충원에 존재했던 최재형 선생의 허묘를 부부합장묘로 복원될 수 있도록 해달라고 호소했다.

그가 주장하는 것은 과거의 정부가 잘못한 일이 밝혀지면 새 정부가 바로잡아야 하고, 그렇게 해야만이 순국선열의 예우를 제대로 하는 것이며, 법이 바뀌었다고 잘못된 행정을 그래도 답습한다면 그 또한 과거의 행정착오를 인정하고 옹호하는 것이라고 했다. 틀린 말이 아니다.

최재형기념사업회와 최재형 후손들은 키르기스스탄 대한민국 대사관과 협력해 올해 부인 최 엘레나 페트로브나의 유골을 국내로 봉환하기 위한 준비를 마쳤다고 한다.

그리고 올해는 대한민국과 키르기스스탄 수교 30주년으로 현재 후손들한테도 동의서를 다 받았으며, 부인의 유골과 우수리스크 최재형 선생의 집 마당에서 흙 한 줌을 가져오거나, 최재형 선생의 유품을 애국지사 묘역 108위에 부부합장묘로 복원시킬 준비가 되어 있다고 한다.

이에 5월 10일 출범하는 윤석열 정부는 순국선열을 제대로 모셔서 과거 정부와 차별화해주기 바란다고 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주기 바란다.
가금현 기자 ggh70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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