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글로벌 청년이 되어

문영숙의 꼭 알아야 할 항일독립운동가 최재형
<6> 글로벌 청년이 되어
  • 입력 : 2021. 07.26(월) 10:26
  • 가금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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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영숙 독립운동가최재형기념사업회 이사장
[문영숙의 꼭 알아야 할 항일운동가 최재형/CTN]최재형이 가출을 한 후 선한 러시아 선장을 만났던 1871년, 조선은 신미양요가 일어나 강화도가 초토화 되던 때였다.

1866년 미국의 제너럴셔먼호가 조선과 통상을 요구하다가 대동강에서 불에 타 침몰한 사건이 뒤늦게 미국에 알려졌다.

미국은 1871년 이 사건의 책임을 추궁하며 5척의 군함과 1,230명의 병력으로 강화도를 공격했다.

초지진을 점령한 미군은 다시 광성진을 공격하였다. 강화수비군 어재연은 끝까지 맞섰으나 육박전에서 미합중국 해병대 제임스 도허티의 총검에 찔려 전사하고 만다.

바로 이때 조선의 노비아들인 11살의 최재형은 러시아 상선을 타고 6년 동안 세계 곳곳을 누비고 다닌 것이다.

1881년에 신사유람단의 일원으로 일본에 간 유길준보다 무려 10년이 앞섰고, 1888년 미국으로 망명한 서재필과 서광범보다 무려 17년 전의 일이었다.

최재형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아름답고 황홀한 풍경을 보며, 그 도시를 건설한 표트르 대제를 가슴에 품고 롤모델로 삼았을지도 모른다.

표트르 대제는 로마노프 왕조의 황제로 본명은 표트르 알렉세예비치 로마노프이다. 표트르의 큰형은 일찍 죽었고, 둘째 형은 정신지체아로 정치에 참여할 수가 없었다.

표트르는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으나 이복누이인 소피아 공주의 쿠테타로 표트르는 궁 밖에서 불행한 생활을 해야 했다.

그러나 크레물린 궁궐 밖의 생활은 표트르에게 많은 경험의 기회를 제공했다.

영국이나 네덜란드 사람들을 자유롭게 만날 수 있었고, 그들의 선진문화를 쉽게 접할 수 있었다.

특히 과학과 실용적인 문화에 관심이 많았던 표트르는 다양한 기술에 호기심을 갖고 어릴 때 석공기술과 목수 일을 배웠다.

표트르 대제는 어린 시절부터 바다를 가까이 했고, 특히 영국이나 네덜란드 선장들로부터 항해술 및 선박에 관한 지식들을 배웠다.

최재형은 표트르 대제의 어린 시절과 자신을 동일시하지 않았을까. 최재형은 6년간의 항해를 마치고 아버지가 사는 얀치혜로 돌아와 정원을 가꾸고, 유실수를 심고, 공중목욕탕을 지었다.

필자는 <독립운동가 최재형>에서 당시 최재형의 심리를 아래와 같이 풀어냈다.

재형은 빅토리아호가 네바 강에 들어설 때부터 강 양쪽에 지어진 아름다운 건물에 온 정신을 빼앗겼다. 나타샤가 강변의 경치에 황홀해하는 재형에게 말했다.

"표트르 대제는 이 네바 강을 파서 수많은 운하를 만들었어. 그리고 강변에 저토록 아름다운 건물을 지은 거야. 표트르 대제는 이 도시를 건설하면서 유럽의 창이라고 했대"
빅토리아 호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겨울을 난다고 했다.

시베리아에서 가져온 모피는 아주 비싼 값에 팔려서 선장부부는 많은 이익을 남겼다며 흡족해했다.

재형은 여름궁전을 돌아보며 선장부인이 보여준 동화책에서나 보았던 꿈 속 같은 궁전들을 실제로 볼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만 했다.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궁전이 실제로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아요"
나타샤는 자신이 러시아 사람이라는 사실을 굉장히 자랑스러워했다.

재형은 나타샤를 보며 자신도 조선사람이라는 것을 자랑스러워 할 수 있을까 문득 문득 생각에 잠기곤 했다.

나타샤는 조각상 하나하나에 깃들어 있는 이야기들을 재형에게 들려주었다. 궁전에 새겨진 조각들은 거의 다 성경과 관련이 있었다. 재형은 대리석으로 된 멋진 조각상들을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조각상들은 대부분 성경에 나오는 열두제자의 모습이거나, 아기예수를 안은 성모마리아의 모습이었다.

재형은 배를 타고 오는 동안 나타샤를 통해 성서에 나오는 많은 이야기를 들어서 조각상들이 전혀 낯설지는 않았다.

재형은 이렇게 멋진 도시를 건설한 표트르 대제를 닮을 수만 있으면 꼭 닮고 싶었다.

특히 표트르 대제가 자신처럼 어린 나이 때 네덜란드에 가서 힘들게 배를 만드는 기술과, 항해 기술을 배웠다는 말에 재형은 표트르 대제와 막연한 동질감을 느끼게 되었다.

표트르 대제가 모스크바 대공국의 서쪽 끝에는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새로 건설하고, 동쪽으로는 블라디보스톡까지 국토를 넓혀, 마침내 러시아 제국을 선포하고 황제라는 칭호를 처음으로 사용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 재형은 가슴이 뛰었다.

재형은 마치 러시아의 동쪽 끝에서 온 자신이, 표트르 대제와 만나기 위해 러시아의 서쪽 끝으로 온 것 같은 행복한 착각도 들었다. - 중략 -

최재형은 6년 간의 선원생활을 마치고 1877년에 블라디보스토크에 돌아온다. 표트르 세메노비츠 선장이 나이가 많아 다른 사람에게 배를 팔았기 때문이었다.

선장은 최재형을 블라디보스토크에 있는 친구 회사에 상사원으로 취직을 시켜주고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돌아간다.

최재형은 유창한 러시아 어를 구사하며 4년 동안 선장의 친구회사에서 상사원으로사업수완을 익히고 인맥을 넓혀 나갔다.

그 무렵 블라디보스토크는 제정 러시아의 동방정책으로 많은 군대가 주둔하게 된다.

'블라디'는 러시아 어로 '지배하다'란 뜻이고, '보스토크'는 '동방'이란 뜻이다. 즉 블라디보스토크라는 지명이 곧 '동방을 지배하라' 라는 뜻이다. <계속>
가금현 기자 ggh70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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