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얀치혜의 도헌(군수)로 거듭나다

문영숙의 꼭 알아야 할 항일독립운동가 최재형
<9> 얀치혜의 도헌(군수)로 거듭나다
  • 입력 : 2021. 10.26(화) 10:20
  • 가금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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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TN/문영숙의 꼭 알아야 할 독립운동가 최재형] 최재형은 1895년부터 13년 동안 얀치혜 남도소의 도헌(군수)으로 일을 하게 된다. 노비의 아들로 태어나 낯선 땅에서 그야말로 출세를 하게 된 것이다. 러시아 정부에서는 도헌이 된 최재형에게 두 번째 은급훈장을 수여한다.
바로 이때 조선에서는 일본의 낭인들에 의해 명성황후가 시해된다. 친일내각을 타도하려는 친러파인 이범진은, 서울 주재 러시아 공사인 베베르와 함께 고종을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시킨다. 이른바 아관파천을 단행한 것이다. 이후 고종은 약 1년간 러시아 공사관에 머무르면서, 러시아 군대의 보호를 받게 된다. 조선의 국왕이 러시아 관할권에 들어가게 되면서, 연해주 지역에 살고 있는 한인들이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그 결과 러시아 얀치혜와 추풍 일대에 살고 있던 한인 청년 52명이 통역관에 임명되어 높은 임금을 받게 되었다. 그 중에 대표적인 인물이 김홍륙인데, 그는 러시아 추풍지역에 살던 사람으로, 러시아 대사관의 통역을 담당했고, 고종의 은총을 받아 학부대신으로 임명되었다. 그 외에도 김도일, 유진률, 홍병일, 채현식, 김승국, 김인수, 김낙훈, 황두진 등은, 모두 조선의 중앙에 진출하여 높은 벼슬을 받았고, 조상까지 벼슬을 받게 되었다. 그때부터 추풍과 얀치혜 일대에는 참봉, 주사, 의관, 참서관, 통정 등 한국의 벼슬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생겨났다.
이렇게 러시아어에 능통한 인물들이 조선 궁궐의 부름을 받을 때, 최재형도 조선에 들어오라는 부름을 받았다. 그 당시 최재형 만큼 모든 면에서 거의 완벽한 통역을 하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은 앞 뒤 정황을 따져보면 알 수 있다. 그러나 얀치혜 도헌에 막 임명되었던 최재형은 몇 번에 걸친 고종의 부름에 응하지 않고 그대로 도헌에 충실했다.
박환 교수 저서인 < 시베리아 한인민족운동의 대부 최재형>에는 최재형이 순국한 후 다음과 같은 신문기사 내용이 실려 있다.

리태왕 전하께서 을미년에 로국영사관으로 파천하신 후 널리 노만 국경에 정통한 인재를 기르실제 최씨가 뽑히어서 하루 빨리 귀국하여 국사를 도우라는 조서가 수차례나 내려왔으나 무슨 생각이 있었던지 굳게 움직이지 아니하였으며......

-<동아일보> 1920년 5월 2일자

위의 기사를 보면 한번이 아니라 여러 번에 걸쳐 리태왕 전하의 부름을 받은 것을 알 수 있다. 리태왕 전하는 당시 고종황제였으니, 당시의 정황을 정확히 알 수 있다.
보통사람들의 정서로 비추어보면 조선에서 호적도 갖지 못한 노비의 아들인 최재형이 몇 번에 걸친 고종의 부름에 응한다면 대단한 벼슬을 거머쥐게 되는 절호의 기회였다. 뿐만 아니라 노비의 아들로 하루아침에 신분을 뛰어넘을 수 있는 최고의 순간이었을 것이다. 설사 노비출신이 아닌 양반의 신분이라도 조선의 황제가 부르는데 어디 쉽게 거절할 수 있었을까. 그러나 최재형은 고종의 부름에 응하지 않는다.
최재형은 바로 다음 해, 제1차 전 러시아 읍장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상트페테르부르크에 가서 알렉산더 3세의 연설을 듣게 된다.
최재형은 러시아 전체에서 한인을 대표하는 첫 번째 공식행사에 참가한 것이다. 그 후에도 1896년 5월 13일, 최재형은 페테르부르크에서 개최되는 니꼴라이 2세 대관식에, 한인대표로 참가하여 황제가 직접 하사하는 예복을 받게 된다. 이러한 영광은 러시아에 살고있는 한인으로서 최고로 영예로운 일이었다. 이때 최재형은 또 러시아 황제로부터 훈장을 받게 되는데, 이처럼 최재형은 러시아 정부로부터 두터운 신임을 받게 되고 한인사회에서는 점점 신망과 존경이 높아졌다.

최재형은 도헌의 자리에서 공무를 보면서 한인교육에 필요성을 느끼고 교육사업에 박차를 가하게 된다. 이 무렵 러시아에서는 각 지방에서 학교를 건립하여 재러 한인 동포들에게 러시아화 정책을 펴게 되는데, 그 첫 번째 시도가 한인들에게 러시아 교육을 시키는 일이었다. 그러나 한인들은 이주 초기에는 이러한 러시아의 정책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고, 한문교육을 시키거나 학교에 보내는 대신 일을 더 중요시했다.
최재형이 도헌이 된 후에도 한인들의 교육관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최재형은 러시아 정교회 학교의 초기 학생으로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러시아식 생활방식에 밝았고, 러시아에서 살아가려면 러시아 교육이 필수라는 사실을 절감했다. 따라서 최재형은 한인 동포들에게 러시아 교육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계속-

<참고서적> 박환 교수의 <시베리아 한인 민족운동의 대부 최재형>
문영숙의 <독립운동가 최재형>
가금현 기자 ggh70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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