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회] 고종은 헤이그 사건으로 폐위 군대마저 해산되자

문영숙의 꼭 알아야 할 항일독립운동가 최재형
[17회] 고종은 헤이그 사건으로 폐위 군대마저 해산되자
  • 입력 : 2022. 08.29(월) 10:37
  • 가금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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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영숙 독립운동가최재형기념사업회 이사장
[문영숙의 꼭 알아야 할 항일독립운동가 최재형/CTN]만약에 만국평화회의가 연기되지 않고 1906년 8월에 열리기만 했어도, 헤이그 특사는 성과를 거둘 수 있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평화회의 참석은 불가능했고, 평화회의 의장인 러시아 대표 넬리도프 백작을 비롯하여, 미국, 프랑스, 영국, 독일 등 주요국 위원들과의 면담 신청은 모두 거절당했다. 평화회의 부회장이자 네덜란드 수석대표인 드 보포르는, 특사단을 방문하여 "러시아는 대한제국의 운명을 전적으로 일본에 위임했으며, 대한제국의 저항은 쓸모없는 것"이라는 러시아 측 입장을 전달했다.

이준의 순국 이후에도 이상설, 이위종은 헐버트와 함께 영국, 미국의 여러 도시들을 순방하며 대한제국의 독립 지지를 호소했다.
이 사건이 전해지자 통감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는 고종에게 책임을 추궁하며 퇴위를 강요하였다.

이토는 7월 18일 그들의 외무대신 하야시[林董]를 서울로 불러 함께 고종을 협박하였고 밤을 새워가면서 항거하던 고종은 결국 '대사를 황태자에게 대리시킨다'는 황태자 섭정의 조칙(詔勅)을 승인하였다.

그러나 일제와 친일각료들은 이 조칙을 '양위'로 왜곡 발표하고, 20일에 양위식을 강행하였다. 흥분한 군중은 일진회의 기관지인 국민신문사 및 경찰관서 등을 습격 파괴하고, 친일괴수 이완용의 집에 불을 지르는 등, 서울 장안은 유혈과 통곡소리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이를 계기로 7월 24일 일제의 차관정치(次官政治)를 위한 한일신협약이 체결되고, 27일에는 언론탄압을 위한 신문지법이, 29일에는 집회결사를 금지하는 보안법이 공포되고, 31일에는 군대해산명령이 내려졌다.

이에 대한제국의 구식군대들과 애국자들의 울분은 하늘을 찔렀다. 그들은 두만강과 압록강을 건너 중국과 러시아로 모여들었다. 연해주에 사는 한인들도 울분이 들끓었다.

최재형은 이제 때가 무르익었다고 생각했다. 최재형은 이범윤을 통해 러시아 공사 이범진과도 연락했다. 이범진 역시 재러 동포들을 바탕으로 러시아의 힘을 빌려 대한제국의 국권을 회복하고자 했다. 최재형은 이범진에게 편지를 보내 최재형의 의병활동을 중앙에서 지원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이범진은 최재형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러시아 고위층의 지원을 허락 받았다.

한편 재러 한인 지도자들은 한인들의 계몽과 민족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1908년 2월 26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우리말로 발행된 최초의 일간신문을 내게 되는데, 바로 해조신문이었다. 당시 일본과 원산을 오가며 무역을 하던 최봉준(崔鳳俊)이 투자한 신문사였다.

최재형은 이 신문에 동포들을 계몽하기 위해 글을 실었다.

'나는 초야의 묻힌 일개 농부라, 세계 형편과 본국 사정이 어떠한지 귀먹고 눈 없는 사람이 되어 듣고 보기를 원하지 않더니, 돌연히 블라디보스토크 지방에서 세상 사람의 이목을 깨워 총명하게 하려는 기관이 생겼다 함으로, 그것이 무슨 기관인가 얼핏 보고자 했더니, 급히 보매 곧 <해조신문>이란 종이 한 장이라. 놀라서 살펴보니 과연 귀와 눈을 깨우는 기관인 것을 비로소 깨달을 지라. 매일 벗을 삼아 신문을 애독하는 바, 기보 제 23호에 기제한 단연동맹회의 추지를 대하여, 재삼 경독하매 졸다가 깨어나듯 정신이 황연하고 마음이 상쾌하여, 축하함을 마지못하노니, 대개 아편의 해가 지독 지악하여 사람의 신심을 교란하고, 사업을 방해하여 재산을 탕패하며, 생명까지 잃게 하는 독약이라. 그러하므로 지금 청국에서도 특별히 외국과 회의하고 아편 금지하는 약조를 제정하여 엄하게 다스리는 바라. 우리 동포에도 혹 이에 빠져서 패가망신하는 자가 많으나, 정부에서도 금치 못하고 부형도 끊게 못하므로, 유식자의 근심이 적지 않더니, 이제 여러 사람들이 타인의 권고를 기다리지 않고 능히 자강력으로 동맹회를 조직하고 확연히 일도양단의 용맹을 떨쳐 스스로 끊기를 결심하니, 이는 족히 조국을 흥복하고 문명에 진보하여 독립자주할 기초가 될지라. 어찌 감사하고 환영하지 않으리오. 내가 비록 어두운 곳에 있을지라도, 조국의 동포를 위하여 깊은 마음을 이기지 못하노니, 즉시 약속하고 나아가 축하의 일배주라도 서로 위로하고자 하나, 다만 신상에 관계되는 연고가 있어 일장 서신으로 동정을 표하노니, 아무쪼록 그 마음을 더욱 든든히 지키고 일심단체하여 만리전정에 사업을 발달시키며 아편을 끊기를 간절히 바라노라.'

<< 해조신문>> 1908년 4월 16일 <아편단연회의 결성을 축하하는 글>
참고서적 : 박환 저 : <시베리아 한인민족운동의 대부 최재형>, [네이버 지식백과] 헤이그특사사건 [─特使事件]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가금현 기자 ggh7000@hanmail.net
가금현 기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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