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회]동의회 조직

문영숙의 꼭 알아야 할 항일독립운동가 최재형
[19회]동의회 조직
- 문영숙 독립운동가최재형기념사업회 이사장
  • 입력 : 2022. 12.02(금) 17:46
  • 가금현 기자
오피니언
기고
칼럼
사설
인사
종교
동정
신년사
송년사
안창현의 칼럼
발행인 칼럼
CTN논단
만물창고
가재산의 삶의 이야기
리채윤의 실천하라, 정주영처럼
문영숙의 꼭 알아야 할 항일독립운동가 최재형
CTN문학관
김영희 교육에세이
박순신의 사진여행
주대호의 물고기 사육정보
미디어 포차
문영숙 이사장
[문영숙의 꼭 알아야 할 항일독립운동가 최재형/CTN]이위종이 러시아 귀족인 장인 노리겐 남작을 대동하고 얀치혜의 최재형을 찾았을 때, 러시아에서는 한국의 국경에서 한인의병부대와 일본군 사이에 격렬한 무력 충돌이 있을 것을 예상하고 있던 때였다. 때문에 이들의 방문이 의병봉기를 위한 중대한 행동이라고 판단했다.

러시아의 예상대로 얀치혜 지역에 있던 최재형과 이범윤은 얀치혜 의병들을 중심으로 항일의병투쟁 단체인 동의회를 발기한다. 동의회 발기인을 살펴보면 지운경, 장봉한, 전제익, 이승호, 이군포, 최재형, 엄인섭, 안중근, 백규삼, 강의관, 김길용, 이위종, 조순서, 장봉금, 백전성, 김치여 등이었다.

동의회는 지역적으로 얀치혜와 수청지역, 그리고 이위종으로 대표되는 페테르부르크 세력으로 구성되었다. 얀치혜 세력은 최재형, 이범윤, 지운경, 장봉한, 전제익, 전제악, 이승훈, 이군포, 엄인섭, 안중근, 백규삼, 김치여 등이었다. 이렇듯 동의회는 얀치혜지역을 중심세력으로 하고, 수청지역의 인물들이 가담하여 조직된 독립단체였다.

동의회 발기인들은 1908년 4월 얀치혜에 있는 최재형의 집에서 회의를 열고 동의회를 조직할 것을 결의하였다. 의병 수백 명이 참석한 가운데 총회를 열고 총장, 부총장, 회장, 부회장, 기타 임원들을 선출하였는데, 당일 임시회장으로 이위종이 회의를 주재하였다.

선거 결과 총장에 최재형, 부총장에 이위종이 선출되었다. 당시 의병세력 중에서 이범윤 세력이 막강했다. 이위종이 부총재에 당선된 이유는 러시아의 지원을 받으려면 이위종의 부친인 전 러시아 이범진 공사의 명성과 지위가 필요하다고 느낀 세력들이 이위종에게 표를 던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결과에 이범윤은 크게 분개했다. 일본의 기록은 당시의 상황을 소상하게 밝히고 있다.

부총재 투표 개표 결과 이범윤이 1표 차이로 차점자가 되자 이범윤은 크게 좌석을 박차고 일어나 말하기를 “내가 강동에 건너와서 국사를 위하여 진력한 지 수년이나 되었는데 명성도 없고, 나이도 어린 조카 이위종에 미치지 못한다니 견딜 수 없다.”
라고 말하자 이범윤 파의 의병들도 동요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에 이위종이 급히 일어나 의장석으로 내려가서 이범윤을 백방으로 위로하고 스스로 부총장의 당선을 사양한 후 이범윤에게 양보하여 일이 점차 무사하게 되었다.

이범윤을 부총장으로 앉힌 후에 회장이하 임원선거를 진행한 결과 회장에는 이위종, 부회장에는 엄인섭, 서기에는 백규삼이 임명되었으며 평의원은 발기인 전부로 구성하기로 했다.

여기에서 아주 중요한 인물인 안중근도 동의회 발기인이었는데, 안중근은 동의회를 조직하기 바로 한 해 전인 1907년에 간도를 거쳐 연해주에 왔고, 바로 최재형 파에 속해 있었다.

안중근은 국내에서의 계몽운동을 중단하고 자신의 독립전쟁 전략에 의거하여 의병부대를 창설하기 위해, 노령(러시아령) 블라디보스토크로 국외 망명을 단행하게 되었다. 이때 국외 구국운동의 자금은 삼합의를 처분하여 마련할 수 있었다.

안중근은 성진(城津)·청진(淸津)을 거쳐 선편으로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할 계획을 세웠다. 그리하여 청진까지 갔으나 일경에 밀항 사실이 발각되어 목적을 달성할 수 없었다. 안중근은 다시 육로를 택하여 함경북도 회령(會寧)을 경유해서 종성군(鍾城郡) 상삼봉(上三峰)을 끼고 두만강을 건너 무사히 간도(間島) 화룡현(和龍縣) 지방전(地坊典)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무렵 북간도(北間島)에는 을사5조약(을사늑약, 1905)에 따라 간도관리사가 폐지되고, 1907년 일제가 간도 용정에 통감부임시 간도파출소를 설치하고 일본군을 주둔시키고 있었다. 때문에 간도에서 의병부대를 창설하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안중근은 약 3개월 동안 북간도 일대를 돌아본 뒤, 다음 용정촌(龍井村) 국자가(局子街) 등지를 경유하여, 1907년 겨울에 목적지인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할 수 있었다.

러일전쟁(1904) 직후 일본과 적대관계에 있던 러시아는 한국 독립운동자들에게 비교적 관대했으므로, 많은 애국인사들이 블라디보스토크로 모여들고 있었고, 안중근이 당도했을 때 블라디보스토크에는 약 5천 명 정도의 동포가 살고 있었으며, 한국인 학교와 청년회도 세워져 있었다.

안중근은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한 직후 계동청년회(啓東靑年會)에 가입하여 임시사찰(臨時査察)의 일을 맡아 보면서, 이범윤과 최재형과 함께 의병부대의 창설을 적극 주장하여 동의회 발기인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최재형은 동의회의 군자금으로 1만 3천 루블이란 거금을 쾌척했다. 이외에 이위종이 1만 루블을 가져왔으며, 6천 루블이 수청(水淸)지방에서 모금되었고, 각지로부터 군총 100정이 수집되었다.

참고서적: 박환 저 <시베리아 한인 민족운동의 대부 최재형>, 문영숙 저 <독립운동가 최재형>
가금현 기자 ggh7000@hanmail.net
가금현 기자 입니다.
긍정적인 사고로 의리를 지키며 살고싶다.
술은 웃음소리가 밖에까지 들리도록 마셔라!
내가 그자리에 있다고

CTN·교육타임즈·충청탑뉴스·CTN방송 발행인
CTN 네이버 블로그 CTN 방송 CTN 페이스북 CTN 트위터
가금현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오늘의 인기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