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태희(시인, 소설가 · 극작가 · 사진작가 · 예술인협동조합 ‘이도의 날개’ 창작동동체 대표 · 세종행복도시필하모니오케스트라 대표)

20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철학자이자 사회 이론가로 이름을 떨쳤던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는 1960년대 프랑스의 일상생활을 분석한 끝에 현대 대중사회를 ‘소비의 사회’로 정의했다. 대중은 상품을 구매함으로써 구매자의 ‘지위’가 얼마나 만족 되는지를 보여주는 이미지가 매력으로 작용한다. 이것은 가전제품, 자동차, 스마트폰 광고를 떠올려 보면 이러한 현대 상품의 특징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보드리야르는 이러한 현상을 ‘생산의 종언’이라고 표현했다. 상품은 물건이 아닌 기호가 되었고, 물건의 효용보다 다른 상품과의 수준 차이나 매력이 더 중요해진 것이다. 이제 상품의 의미는 생산에 투입된 노동의 집약도나 비용이 아니다. 단지 품질의 우수성만이 명품의 판단 기준도 아니다. 상품은 기능이나 필요성 등을 뛰어넘어 사회 구조적인 힘으로 만들어진다. 희소가치가 높아 소수 계층만 접근할 수 있는 상품은 그것을 소비하는 사람의 사회적 지위, 경제력을 규정하는 하나의 기호로써 존재한다. 기호는 나와 남을 구별하는 잣대다. 세계 3대 명문 스포츠카로 일컬어지는 ‘람보르기니’를 예로 들어보자. 글자로 이뤄진 ‘람보르기니’라는 말은 ‘기호’이고 그러한 기호가 상장하는 ‘부와 젊음’은 ‘욕망’이라 할 수 있다. 즉 각각의 사람들이 기호로써 소비하고 질서를 만들며 값비싼 상품을 소비하는 귀족적인 상류 문화를 소리 없는 언어로 바꾸는 것이다. 아울러서 미디어는 이런 현상을 부추기고 가속화하고 부추기며 이미지화에 일등 공신이 되었다.

인간은 동물의 세계에서 완전히 벗어나 만물의 영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언어일 것이다. 그래서 인류 최초의 발명품으로 꼽히기도 하는 언어는 인간을 문명 세계로 이끈 1등 공신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도 지구촌 곳곳에서 생활하는 인간 집단은 언어를 통해 교류하고 협력하면서 비약적인 발전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지리적으로 가까운 공동체는 비슷한 언어로 교류하지만, 거리가 멀어질수록 소통 자체가 점점 어려워진다. 언어가 인류의 공통 분모이자 차별화의 요소라는 뜻이다.

기본적으로 언어는 정보를 다루는 수단이다. 인간은 언어를 활용해 다양한 정보를 효율적으로 정리하고 축적할 수 있다. 무질서한 세상을 언어라는 도구 덕분에 잘 이용할 수 있고 또 포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연하게도 여러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이들은 사회적 권력을 얻게 되는 배경이 되었고 다른 한편으로 ‘미디어 권력’이라는 신조어가 태어났다.

현대 사회에서 언론 혹은 매체에서 사용되는 라틴어 미디어(media)라는 단어는 중간(medium)의 복수형으로 ‘수단’이라는 뜻이다. 영상과 소리를 통해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언어는 대표적인 미디어라 할 것이다. 신문에서 라디오, 텔레비전으로 주요 매체가 발전하면서 자본주의 사회의 광고 또한 점차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신문에 실리는 구인·구직이나 부동산 광고는 정보와 선전을 조합한 형식이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광고는 음악에 맞춰 브랜드를 소비자의 뇌리에 주입하는 방식으로 점점 과감해졌고, 연이어 텔레비전에서는 각종 자극적인 이미지를 활용해 소비자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도구가 되었다. 이로써 권력은 타인의 의지에 상관없이 자신의 의도를 실현하는 힘으로써 상호작용 속에 일어나는 관계 형성을 기초로 한다. 권력은 국가의 실체를 통해 근대성의 사회에서 행사된 것이고, 권력은 물질적 자원과 권위적 자원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그렇게 권력은 자원에 따라 지배력이 달라지면서, 사실 지배와 복종이라는 위계적 불평등을 만드는 현실이 되었다.

인간은 수십만 년 동안 작은 부족 사회를 이루며 살았고, 인간의 사회적 본능도 거기에 맞게 진화했다. 하지만 18세기의 발명품인 근대 민주주의나 21세기의 발명품인 소셜미디어는 그 본능에 아직 완전히 동화되지 못했다. 인간은 매번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언제나 시민의 위대성을 발휘하는 동물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실 수천, 수만 명에게 사생활을 보여주고 실시간으로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살 준비도 되지 않았고 확정하지도 않았다. 대중들은 작금의 진영 논리로써 편 가르기에 빠지고 말장난에 휘둘리며, 네 탓을 하며 집단화하고 있는 현실이 두렵다. 어쩌면 핵폭탄으로 지구의 종말을 맞이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만든 미디어로 종말을 만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기우에 불과하기를 바라는 오늘이다.

정민준 기자 jil3679@hanmail.net 정민준 기자 입니다. CTN 네이버 블로그 CTN 방송 CTN 페이스북 CTN 트위터 정민준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