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5.13(화) 22:22
교육타임즈 지면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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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겨울은 매서운 한파 때문일까, 유난히 추웠다는 생각이 든다. 손인호 시인과 자주 들락거렸고 광화문 연가처럼 꽤 수다를 떨게 도와준 순댓국과 소주 몇 잔들이 생각났다. 봄기운이 묻어나는 조치원역의 기차 소리가 반가운 것은 아마도 며칠 전 억지로 그를 끌어낸 성공적인 유혹 때문이었으리라. 그렇다고 우리가 시대를 아파하고 분노하지 않으면 시가 아니라는(?不傷時憤俗非詩也) 다산 정약용의 언명을 손에 받아 든 것도 아니어서 어디서든 파안(破顔)하고 눈 흘기며 세상을, 미친 정치의 광풍을 축축한 순대를 새우젓 묻혀 어기적거리며 씹어대었던 깜부였다. 그에게서 사람 냄새가 물씬한 것은 왜일까. 아마 천성이 그랬으리라 짐작하지만, 그의 시집 “누구의 잘못도 아니어서”를 읊조려보면 슬며시 그러나 분명하게 진실한 언어로 나타난다.
삶이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을 때
귀신처럼 나타나 손을 내밀어준 사람들이 있다.
어떤 이는 역할이 끝나면 홀연히 사라지기도 했고, 빚을 갚지 못한 채
또 다른 곳으로 흘러가기도 했다.
산에서 만난 나무 한 그루
강요배 화가의 그림
이치코 아오바의 노래
세상의 모든 음악을 진행하는 전기현 님의 목소리
사려니숲길 같은 신형철의 문장들...
살아갈 이유의 목록은 가까스로 가득하다.
아름다움 덕분에 허무를 터득하게 된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어서 다행입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어서 다행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가까이 아픈 사람들에게 몸 공부가 가장 윗길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할 수사 없었다.
아파도 조금만 아프기를...
소설가 전성태는 이렇게 말했다.
가을부터 시집 원고를 거듭 읽고 있다. 시인의 눈으로 세상이 뵈는 시 읽기는 되지 않고, 자꾸 행간에서 어떤 행적을 찾게 된다. ‘우리가 너의 행방을 종잡을 수 없는 것은’이라고 말할 때 ‘너’가 ‘그’로 들린다. 그래, 우리는 그의 행방을 종잡을 수 없다. ‘그늘을 달고 다니는 사람, 그늘에 가려 더 어두운 사람, 어두워서 슬픔과 친해 보이는 사람……’ 하고 그가 검은 나비에 대해 속삭이는 소리에도 인 호일라, 하고 두리번거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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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국선원
부서진 붉은 벽돌로 쌓은 탑 두 기
용암에 다 타 일그러진 불두를 얹은 기괴한 돌하르방
보는 이를 덩달아 놀라게 하는 겁 많게 생긴 사자석 상
과 마당 한 구석 취한 노숙자 같기도 한 석불
대웅 전 처마 끝 물고기가 날아간 풍경은 소란을 잊고
어리둥절한 절 집의 침입자는 의외로 대범하여
무문관이 있다는 곳일까
출입을 금지해 달라는 푯말을 슬쩍 넘어
삿된 짐승 하나 지났을 법한 발자국 더듬더듬 좇아가
면 나타나는 숲속 길
나무들은 저마다 다른 수어를 하고 있었네
난 살아서 왔는지 죽어서 왔는지조차 아득했고
난대시험림 사이 같은 임도는
이 세상 것이 아닌 남국의 내경이었네
보이지 않지만 길을 찾을 수 있다 길의 끝까지 가보고
싶었다 길속으로 사라지는 네가 보였다 더 깊이 들수록
숲의 시야는 분명했고 촤촤 홀로그램처럼 다른 숲이 펼
쳐지고는 했다
어느덧 나도 희미해지고 부리부리한 눈을 한 시커먼
짐승들이 떼 지어 백록으로 오르는 모습에 연화합장
그때 물수리가 높이 날아올랐다 허공을 미끄러지듯 활
공했고
섶섬, 문섬, 범섬
돈내코 공동묘지에서 내려다보이는 서귀 바다 삼존불
에 참례하니
지극한 생의 한 절경이 거기 있었네.
시인 손인호는 서울에서 태어나 여러 곳을 살았다. 거추장스럽지만 밉지 않은 시 같은 것은 묻어두고 지냈으나, 이태 전 산책 친구 금은 돌의 갑작스러운 죽음 뒤에 아침저녁 누군가를 기다리기라도 하듯 책상 앞에 앉았고, 그리움의 부산물을 그럭저럭 모았다. ‘해인사 싸리비’라는 단장을 법정 스님이 〈홀로 사는 즐거움〉에 두고두고 읽힐 시로 소개한 것이 유일하였고, 지금은 영종도에서 육상 화물 하역원으로 일하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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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준 기자 jil3679@hanmail.net
정민준 기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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