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회]최재형, 소고기 납품 거금 벌어 의병들 의식주 및 무기지원

문영숙의 꼭 알아야 할 항일독립운동가 최재형
[23회]최재형, 소고기 납품 거금 벌어 의병들 의식주 및 무기지원
  • 입력 : 2023. 05.23(화) 09:40
  • 가금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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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영숙 독립운동가최재형기념사업회 이사장
[문영숙의 꼭 알아야 할 항일독립운동가 최재형/CTN]동의회는 1905년 이후 러시아 지역에 있는 모든 항일의병세력의 결합이었다. 때문에 동의회는 초기 독립운동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동의회 멤버로는 이범윤 중심의 의병세력이 모태가 되었지만, 여기에 최재형이 낸 거액(1만3천루블)의 자금과 인적자원과 또 이범진, 이위종 부자의 외교적인 노력과 자금지원(1만루블)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이로써 동의회는 의병중심의 이범윤 의병세력과, 러시아 인맥과 행정력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재력가 최재형의 의병들과, 이범진, 이위종 부자를 대표하는 의병세력이 하나로 모인 단체였다.

또한 동의회는 지역적으로는 얀치혜를 중심축으로 하고 수청지방의 의병들과 추풍지방등 연해주 일대의 한인세력이 중심이 되어 조직된 항일투쟁 독립단체였다. 이들은 모두 친러파로서 강한 애국심을 갖고 있었다. 세 세력 가운데 가장 강력한 세력은 최재형을 따르는 의병들이었다.

최재형 세력의 핵심인물은 몇 그룹으로 나눌 수 있는데 귀화한인으로 러일전쟁에 참여했던 엄인섭, 김인수, 윤일병, 유진률을 들 수 있고, 다음으로는 얀치혜 지역의 귀화 한인들로 최재형과 같은 함경도 출신들이 많았다.

1908년 4월 동의회 조직 당시 최재형이 총장이 되고, 이위종이 부총장이 되자 이범윤이 반기를 들고 일어났다. 이 일은 최재형 파와 이범윤 파의 갈등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데, 최재형 파와 이범윤 파가 갈라졌을 때, 최재형 파의 간부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도영장 전재익, 참모장 오내범, 참보 장봉한, 지운경, 미국에서 돌아온 군의관 모씨, 병기부장 김대련, 최영기, 경리부장 강의관, 동부장 백규삼, 좌영장 엄인섭, 제1중대장 김모, 제2중대장 이경화, 제3중대장 최화춘, 우영장 안중근과 중대장 3인이었다.

수청세력으로는 1908년 3월 김공심, 박춘성, 원사집, 박태여 등 4명이었다. 이들은 페테르부르크에서 온 이위종과 얀치혜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던 김기룡을 통해 재러 동포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시켜 조직을 강화하고, 1,200원의 군자금을 마련하여 그 돈으로 총포 40정을 구입하고 포수 50명을 선발하여 얀치혜의 동의회에 참여하였다. 그 후 총기 가운데 30정을 이범윤에게 제공하였다.
수청세력은 1908년 후반기에 최재형과 이범윤 사이에 갈등이 생기자, 어느 파에도 협조하지 않다가 의병들의 약 반수가 해산하였다.

최재형은 자신의 모든 재산을 항일운동을 위해 대부분 사용하였다. 최재형은 러시아 인맥을 통해 체코군이 사용하던 모신 총을 싼 값에 사들여 의병들을 무장시켰는데, 이 총은 옛 소비에트연방이 제2차 세계대전 때까지 사용할 정도로 성능이 뛰어난 소총이었다.

최재형은 재러 한인들 중에 대표적인 자산가로서 각종 사업에 종사했는데,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로 얀치혜에서 동부시베리아 제6연대에 소고기를 납품했는데, 한 달에 무려 150마리의 분량이었다. 금액으로 환산하면 당시에 약 9만 루블이나 되었다.

또한 슬라비얀카에서는 병영을 건축하고 기와를 제조하는 건축업을 했고, 블라디보스토크에서는 페킨스카야 거리에 기와로 지은 건물을 소유하고 있었는데, 그 가격도 약 4-5만 루블이나 되었다.

게다가 집 임대료로 1년에 약 3,000 루블을 받고 있었다. 또한 얀치혜에서도 1년에 임대료로 2,000-3,000 루블을 받았다고 한다. 이 외에도 농업을 경영하여 1년에 적어도 4-5만 루블의 수익을 남겼고, 1910년에는 소고기 납품만 해도 2만 5천 루블을 벌어들였다고 한다.

최재형은 동의회 조직부터 운영은 물론, 항일전투 활동에 드는 무기와 의병들의 피복, 심지어 의병들의 생활비까지 책임지느라 상당한 부담을 안아야 했다.

최재형은 국내에서도 군자금을 모았는데, 1909년 1월에는 함경도 북청의 김승지로부터 2,000원에서 3,000원 정도를 기부받았다. 또한 최재형은 이경화를 통해 북간도에서도 군자금을 지원받았다. 최재형은 또 엄인섭을 통해서도 군자금 모금을 추진했다. 귀화 한인인 엄인섭은 모금과정에서 일본 밀정이라는 이유로 귀화한인을 살해하고 러시아 관원에게 쫒기는 신세가 되기도 했다.

이경화는 최재형의 부하인데 1908년 여름부터 가을 사이에 청나라 오가자에 가서 현금 600원을 모금하기로 하고, 그중 400원을 받아왔다. 이경화는 그 일을 수행하면서 북간도 흑정자 병영에 구금되기도 했다.

그 후 이경화는 1909년 3월에 다시 청나라 오가자에 가서 나머지 200원을 수령했고, 그후 4월 초에 러시아로부터 5연발 총 1,500정을 구입하기로 예약을 완료하였다.

당시 연해주에서는 마적단의 습격에 대비하여 민간인도 총기소유를 공인하고 있었고 총기와 탄약의 매매도 허가제여서 사실상 자유롭게 매매할 수 있었다.

얀치혜에는 블라디보스토크에 본점을 둔 '쿤스트 앤드 알베르스'란 총기판매지점이 설치되어 있었다. 최재형은 이 상점을 통해 무기를 자유롭게 구입할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얀치혜에 최재형과 가까운 러시아군 기병대 제6연대가 주둔하고 있어서, 최재형은 이 부대를 통하여 필요한 무기를 구입할 수 있었고, 무기 운반을 위하여 사람들을 파견하기도 했다. 실제로 최재형은 1908년 11월 29일 샤치사에 의병 20명을 증파하여 탄약 3,000발을 운송했다.

참고도서 : 박환의 <시베리아 한인민족운동의 대부>, 문영숙의 <독립운동가 최재형>
가금현 기자 ggh7000@hanmail.net
가금현 기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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