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사람도 모두 내 가족처럼

(주종순/수필가)



19살 완전 인생 초년생 시절, 집에서 여고 친구들 불러 모아 매일 방문 잠가놓고 녹음기에 카세트 테이프 꽂아 놓고, 누가 춤을 잘 추는지 따라추기 연습에 신나 있고, 아버지는 대학 가기 싫으면 집에서 놀지 말고 직장생활이라도 빨리 시작하라고 재촉하시던 그 무렵,

내가 처음 발을 들여놓았던 아가방 그곳은 나의 인생 출발점 첫 직장이었다. 모 백화점 매니저가 누굴 통해 나를 알았는지, 제안이 들어와 면접을 보고 설레임을 가슴에 꽉 채운 상태로 첫 출근을 하였다.

어린 나이었던 나는 지금 생각해 보면 하얀 도화지를 가슴에 지닌 상태라고나 할까? 아주 청순함 그대로였다. 일을 시작할 때 계절이 겨울이라 너무 많이 추었는데 대부분 창고가 바깥쪽에 있어서 물건을 꺼내올 때마다 춥고, 무겁고, 직장에 얽매인 몸이라 그런지, 점심시간이 되기도 전에 손님 없을 때는 배고픔을 많이 느꼈다.

첫 출근인데도 사장님은 나이 어린 청순한 직원이라고 깐보았는지, 라면을 삶아주고 먹자 하시기에 “별로 안 좋아한다”고 사양하고 매일 굶고 일만 열심히 했다. 사장님 생각엔 적응되면 먹을 거라고 생각하셨는지 삼일 정도 지나니까 사장님이 애로사항 있는지 나에게 물어보셨다. 그래서 나는 당차게도 “너무 피곤하고 점심 먹을 시간도 필요하니 휴식과 식사시간을 달라”고 요청하였다. 나의 요청을 받아주신 덕분에 며칠은 매장 밖에서 점심식사를 할 수가 있었는데, 그 시간이 다리도 좀 쉬는 시간이 됐다. 며칠이 지난 후 사장님은 그 시간도 아까우신지 덜 좋은 표정으로 대하시며 식사시간을 제한적으로 정해주셨다. 너무 돈 생각만 하는 느낌이랄까!

그 시절은 라면 싫어하면 한국사람 아닐 만큼 전국은 라면 열풍이었다. 나도 라면을 엄청 좋아하지만 그래도 직원에게 너무 쉽게 길들이기 위해 그러는 것 같아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서라도 안 먹었고, 그래도 그곳에 나를 취직시킨 언니에 대한 보답을 해야 하겠다는 생각에 매일 내 생각대로 일을 열심히 했다.

매장에 쌓인 먼지도 손님 없을 때마다 놀지 않고 닦아 내고 틈만 나면 정리하고 워낙 부지런한 손놀림을 하니 주인은 칭찬을 많이 하였고 매장에 오는 단골손님들도 “어디서 이렇게 예쁘고 부지런한 직원을 데려 왔냐고” 칭찬들이 자자했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종일을 서서 근무했기에 다리도 아프고, 무겁고, 퉁퉁 붓고, 그래도 참으며 일했는데 어느 날부턴가 사장님은 본인 먹은 설거지도 시키는 것이었다. 내가 아무리 어려도 참는 것도 한계가 있지 ‘정도가 아닌 거야’ 내 맘속에 갈등이 일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만두겠다고 말씀드리고 나서 내 물건을 챙기기 시작했다.

사장님이 다급해지셨는지 날 붙들고 매장에서 신던 신발주머니도 빼앗고 못 가게 말리는 거였다. 사람이 아쉬우니까 붙잡고 있을 땐 쉽게 보고, 사장님 연륜치고는 인격이 너무 부족한 듯 느껴지는 수전노(守錢奴)랄까 하여튼 나는 어린 직원이었지만 사장님에게 교훈을 남기고 싶어 그대로 밀어부쳤다. 마지막이지만 할 얘기는 하고 가자는 생각에 의자에 앉아 또박 또박 얘기를 했다.

내가 그만두는 이유며, 뒤에 오는 직원에게도 직원으로서의 예우를 받으며 생활이 가능하도록, 그중에 꼭 해야 될 말은 “사람은 평등하니 사회인끼리는 서로의 입장을 배려하고, 사장과 직원이 아무리 가깝다고 해도, 일 구분은 있어야 되고, 약자를 배려하며 역지사지(易地思之)로 생각을 해보시라고. 누구든 귀하지 않은 사람 어디 있으며, 어느 집이든 아들딸 다 귀한 건 같다"고.

요즘 누구의 아이디어로 시작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캐치 프레이즈가 떠오른다.

"지금 상대하고 있는 사람도 당신의 가족일 수 있다"

어떤 식당에 가면, 티셔츠 등판에 ‘저도 한 가정의 귀한 아들이며 딸입니다“ 라고 쓰여진 옷을 입고 근무하는 종업원도 보인다. 그런 문구가 보일 때마다 본인을 더욱 다지게 된다.

어쩌면 일그러진 우리 모두의 인격이나 생각이 부족한 탓에 사방의 문구나 메모판들이 회초리를 들고 비상근무를 하는 듯한 생각에 자신을 돌이켜 보고 반성하기도 한다.

어제는 존경하는 스승님을 만나 식당으로 가던 중, 갑자기 선생님이 옆에 서 있던 경찰차에 다가가시더니 무어라고 말씀을 짧게 건네시고 오셨다. 나는 선생님께 “잘 아는 사람이냐”고 여쭈어보니 “아니 식사 시간인데 식사 안 했으면 점심 식사 함께하자”라고 하셨단다. 저하고 너무 차이나는 성격에 제가 엄청 웃었지만 뒤돌아 생각하니 선생님의 모습은 저에게 실천으로 가르침을 주셨던 것이다. 요즘 늦게 다시 스승님을 만나 인생 교육을 무료로 전수받는 기분이었다.

근래 어느 언론기사에서 ’상동구이(尙同求異)‘라는 제하의 글을 읽은 기억이 난다. ’상동구이(尙同求異)‘라는 말은 '같음을 숭상하되 다름을 추구하라는 뜻이란다. 즉 누군가에게 가르침을 받더라도 그 가르침을 그대로 하라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상황에 따라 탄력적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뜻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제자가 보는 앞에서 선생님께서 보이신 행동은 탄력적으로 행하지 않고 그대로 따라해도 훌륭하다 싶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을 내 가족처럼 여기시며 아끼시는 우리 스승님. 오늘도 좋은 걸 또 배웠습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정민준 기자 jil3679@hanmail.net 정민준 기자 입니다. CTN 네이버 블로그 CTN 방송 CTN 페이스북 CTN 트위터 정민준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