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세계를 돌며 유럽의 아름다운 공원과 문화시설에 감동

문영숙의 꼭 알아야 할 항일독립운동가 최재형
<11>세계를 돌며 유럽의 아름다운 공원과 문화시설에 감동
- 독립운동가최재형기념사업회 이사장
  • 입력 : 2021. 12.06(월) 09:27
  • 가금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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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영숙의 꼭 알아야 할 항일독립운동가 최재형/CTN] 한인마을에 정원과 공원을 만들고 유실수를 심어 문화를 접목시키다.

유럽의 아름다운 정원과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환상적인 모습에 감동한 최재형은 한인 마을에 최초로 정원과 공원을 만들고, 유실수를 심고 가꾸며 한인들에게 사업을 권장했다.

최재형은 교육의 중요성을 깨닫고 한인 마을마다 무려 32개의 학교를 세웠고 얀치혜에 세운 우신학교는 교장을 맡아 직접 학교를 운영했다.

최재형은 그 후에도 증등학교를 세워 한인들의 교육사업을 더 넓히기 위해 기금 마련의 방편으로 기업에 눈을 돌렸다.

당시 러시아 정부는 극동의 방위력을 증강시키기 위해 군대를 파견하였고, 군인들이 지낼 막사를 짓는 등, 다양한 건축사업들이 활발하게 시작되었다.

최재형은 육군 및 해군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판단한 후, 도헌의 자리에서 맺은 인맥을 동원해 러시아 당국의 깊은 신뢰를 바탕으로 군인들을 위한 식량, 군복, 건재 등을 공급하는 군납 회사를 차렸다. 회사는 금세 번창했다. 교육기금을 마련하려던 최재형의 계획은 성공을 거두었다.

최재형은 군납업을 통해 벌어 들인 돈으로 얀치혜에 6년제 중학교를 설립했다. 최재형은 중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을 중부지역의 교육기관에 보내 계속 공부를 할 수 있도록 장학금을 대 주었다. 학생들은 공부를 마치고 한인사회를 이끄는 지도자로 성장해갔다.

대부분의 한인들은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고향을 등진 사람들이라, 날마다 일벌레처럼 땅을 파고 농사를 짓는 일을 천직으로 알았다. 비록 낯선 땅이었지만 일을 하고 땀을 쏟는 만큼 수익이 생겼다. 한인들은 수익이 생기면 더 넓은 땅을 일구고 땅을 넓히는 일에 몰두했다.

그러나 최재형은 6년 간의 항해를 통해 다양하게 사는 외부세계를 경험한 사람이라 생각의 차원이 달랐다. 최재형은 한인 마을에 유실수와 관상목을 심어 마을을 아름답게 꾸미는데 힘을 쏟았다.
1884년에는 자신의 집도 서양식으로 개조하고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집에 정원을 만들어 집 안팎을 아름답게 꾸몄다. 더 나아가 마을에 공원을 만들었는데 최초의 공원이 노보키예프스크 공원이었고, 두 번째 공원이 니콜스크에 공원이었다.

1916년에는 슬라비안카가 따뜻하고 온화한 기후의 위도에 있다는 것을 참고해서 해변마을에 문화휴식 공간도 만들었다. 최재형은 또 포시에트촌이 크림반도와 같은 위도라는 것을 파악하고 크림반도에서 장미과 식물을 들여와 마을에 심도록 했다. 당시 여름이면 슬라비얀카 항구에 러시아 군함들이 정박하곤 했는데 해군 장교들은 딸기와 장미과 열매를 많이 샀다고 한다.

최재형은 한인들에게 높은 수익을 올리기 위해 가축과 가금류들을 사육하도록 장려했다.

한인들은 최재형의 지도를 받고 소, 닭, 돼지등 가축들을 기르기 시작했다.

최재형은 가축의 개량사업에도 관심이 높았다.

재래종은 크기도 작고 우유를 생산할 수 없었다.

극동지역에 주둔하고 있는 러시아 군인들이 고기와 우유를 많이 소비하기 때문에 항상 부족한 형편이었다.

이에 최재형은 소의 종축 개량에 주목하여 무게가 많이 나가고 우유를 많이 생산하는 소를 길러내면 좋겠다고 판단했다.

한인들은 최재형의 초상화를 걸어 놓을 정도로 존경했기 때문에 최재형이 시키는 대로 잘 따랐다.

최재형은 한인들에게도 러시아인들에게도 그만큼 신망이 높았기 때문이었다.

한인들은 최재형의 말을 듣고 중국이나 조선에서 송아지나 비쩍 마른 가축들을 싼 값에 들여와 풍성한 목초지에서 살을 찌워 팔았다. 자연히 이득을 많이 얻었다.
비숍여사의 <조선과 그 이웃나라들>에는 당시 조선인들의 활약을 아래와 같이 묘사했다.

포시에트 만은 크고 멋진 막사였다. 여기에 시민은 없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 크지 않는 거리에도 한인 정착민들이 있었다. 이 한인들이 블라디보스토크에 공급되는 육류의 대부분을 책임지고 있었다. 강인하고 건강해 보이는 수많은 한인들을 만났는데 그들은 60여 마리의 살찐 가축들을 증기선이 있는 항구로 몰고 가고 있었다.

위의 글에 나타난 것처럼 한인들은 비쩍 마른 소를 중국에서 사다가 살을 찌워 군인들에게 팔았다. 한인들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최재형이 한인들은 당연히 고마웠을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최재형은 어업에도 신경을 써서 한인들이 계절 어업을 하도록 권장했다. 봄이 되면 연어들이 무리를 지어 태평양에서 연해주 우수리강으로 거슬러 올라왔다.

최재형은 러시아 군인들이 빵과 함께 연어알을 주요식품으로 애용하는 것을 알고 한인들에게 연어가 올라오는 봄철에 맞춰 마을마다 팀을 이루어 강 어귀에 그물을 치게 했다.

산란을 위해 상류로 올라오는 연어들은 잡아도 잡아도 계속 올라왔고 한인들은 연어알로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이렇듯 연해주에서는 농사를 짓던 농민들도 계절에 맞춰 약 보름 남짓한 기간에 협동어업을 하며 고수익을 올렸다.
1890년대에는 최재형도 육류 판매업을 직접 하게 되는데 이 사업은 최재형에게 큰 부를 안겨주었다.

참고서적 : 박환 저서 <시베리아 한인민족운동의 대부 최재형>
가금현 기자 ggh7000@hanmail.net
가금현 기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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