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본의 방해공작, 러시아에서 최재형 압박

문영숙의 꼭 알아야 할 항일독립운동가 최재형
<25>일본의 방해공작, 러시아에서 최재형 압박
문영숙 독립운동가최재형기념사업회 이사장
  • 입력 : 2023. 09.19(화) 16:02
  • 가금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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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독립운동가최재형/CTN] '최재형 겉으로는 의병운동 접은 것처럼 위장' '이범윤 부하 최재형 살해 기도' '러시아 측 최재형 의병부대 급습 무기와 탄약 회수'

국내진공작전이 영산전투를 끝으로 참패를 당한 후인 1908년 하반기. 최재형과 이범윤 사이에 갈등이 고조되었다.

간도 관리사였던 이범윤은 마패를 보이며, 자신을 고종의 명을 받은 왕족임을 내세워 소작농 출신인 최재형을 무시했다.

최재형은 동의회 조직 당시, 이범윤에게 군자금을 지원하라고 한인들에게 증표를 주었지만, 이범윤과 갈등이 생긴 이후로 그러한 편의를 제공하지 않았다.

1908년 11월 7-8일 경에는 이범윤의 창의회 본부에 총이 200정 가량 있었는데 수청 방면의 주민이 또 200정의 총기를 모아왔다.

그러나 최재형과 이범윤은 서로 의견이 맞지 않아 그 총을 도로 돌려보냈다. 이범윤은 블라디보스토크에 자산가로 소문난 최봉준을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지만 거절 당했다. 이범윤은 다시 얀치혜 부근에 있는 부하 200여 명과 손을 잡고 경성을 습격하는 계획을 세우고, 최재형 세력도 제거하려고 했다.

이범윤의 부하 한기수, 박창수, 박후보 등 세 사람은 서로 결탁하여 최재형의 부하 중 중심인물인 김기룡, 안중근, 엄인섭 세 사람 가운데 김기룡을 살해하려고 최재형의 집에 침입했다가 발각되었다.

이 사건으로 최재형과 이범윤의 사이는 더 벌어졌다. 이범윤은 서둘러 최재형과 화해를 시도했으나 최재형은 이범윤 부하의 행동을 러시아 관헌에게 알려 이범윤의 부하 8명이 러시아 관헌에게 체포되었다.

사태가 이에 이르자 이범윤 세력은 1909년 1월에 최재형을 저격하기에 이르렀다.

최재형은 권총 세 발을 맞았으나 다행히 생명이 위독한 상태는 아니었다.

이를 계기로 최재형과 이범윤의 관계는 더욱 더 악화되었으며, 급기야 최재형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자신이 간행하고 있는 <대동공보>에 이범윤 세력을 비판하는 글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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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지방의 풍설을 듣건대 무뢰배들이 의병이라고 가칭하고 각지 유명한 인사의 성명을 팔아 내 성명을 도용하여 위조서면을 각처에 전파하여, 인민 다수의 재산을 탈취하여 중도에서 자신의 돈인 양 이를 착복하고 있다 하니 슬프구나. 우리 약한 동포 등이 저 무뢰한에게 기만을 당하여 무한한 해를 입고 있으니, 이후부터 저 잡배의 위조서면과 애국조라고 자칭하는 자에게 보조금을 주지 말라. 이와 같은 피해는 상호 이를 주의하고 거절하여 징치하기를 바란다.

이범윤 세력의 의병들은 최재형에게 자신들을 보살펴 주지 않는다고 반감을 갖고, 최재형이 양반이며 황족인 이범윤을 모시지 않는다며, 미천한 출신 주제에 재산을 긁어모아 부를 이루긴 했지만, 이범윤을 양반 대접을 하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그 즈음 일본은 러시아 정부에 압력을 넣어 재러시아 한인들의 의병활동을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러시아는 재정적 압박으로 러.일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에게 전쟁 배상금을 지불하지 못했기 때문에, 일본은 사사건건 러시아 측에 한인들의 의병활동을 막아달라고 압력을 넣었다. 이에 러시아는 이위종에게 추방령을 내리고, 이범윤에게는 현상금까지 내걸었다.

최재형도 1908년 말부터 드러내놓고 의병지원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최재형은 일본의 방해공작을 받게 되자, 겉으로는 무장투쟁 노선을 그만두는 것처럼 보이도록 하면서,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1909년 2월 3일, 최재형은 러시아 관원에게 총기와 탄약등 원조를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 최재형은 비밀리에 군자금을 모금하여 무기를 구입하고 200여 명의 대원들에게 사격훈련을 시켰다. 러시아 보고서에는 그 일을 아래와 같이 기록하고 있다.

‘자신의 이름을 어떻게든 역사에 남기고 싶어하는 표트르 최는 일가친척들의 칭송을 한 몸에 받으며 이미 이범윤과는 별개로 독자적으로 행동을 개시하였다. 그는 요원들을 소집하여 수청과 추풍 각지에서 자신의 편지를 전달하면서 새로운 군대를 조직하는 데 필요한 경비를 보내 달라고 애원하고 있다.

기부금은 각 지방의 한인 마을에서 속속 전달되고 있다. 한 군인의 말에 따르면 표트르 최는 여러 사람들로부터 적어도 1만 불 이상을 걷어 들이는 데 성공했다고 한다. 그는 이 돈으로 무기와 탄환을 사 들이기 시작했다. 현재 그의 휘하에는 무기를 소지한 군인이 100여 명 이상 있으며 부대원 전체는 200명 이상에 이른다. 군인들 중 일부는 얀치혜 아래쪽에 있는 그의 제유소(버터제조소)에 머물러 있고, 일부는 바라노프스크와 지신허에 있다. 그곳에서 사격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이처럼 최재형은 단독으로 모금을 하고 무기를 사서 의병들을 훈련시켰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일본은 외교적으로 러시아를 압박해 한인들의 의병활동을 하지 못하도록 했다. 실제로 최재형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던 얀치혜 주둔 제6연대 소속 러시아 군인 250여 명이 1909년 1월에 최재형의 의병사무소로 가서 일체의 총기와 탄약을 압수하고 해산명령까지 내릴 정도였다.

참고서적 : 박환의 <시베리아 한인민족운동의 대부 최재형>, 문영숙의 <독립운동가 최재형>
가금현 기자 ggh7000@hanmail.net
가금현 기자 입니다.
긍정적인 사고로 의리를 지키며 살고싶다.
술은 웃음소리가 밖에까지 들리도록 마셔라!
내가 그자리에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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