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회] '하면 된다'는 불굴의 도전정신을 갖는다

리채윤의 실천하라, 정주영처럼
[3회] '하면 된다'는 불굴의 도전정신을 갖는다
- 이채윤 CTN/교육타임즈 논설위원
  • 입력 : 2023. 12.11(월) 10:55
  • 가금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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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채윤 CTN/교육타임즈 논설위원
[리채윤의 실천하라, 정주영처럼/CTN]행복한 인생을 보내기 위해서는 하고자 하는 일을 끈기 있게 계속 하라.
- 조셉 존슨

끈기입니다.

일본에서 '경영의 신'이라고까지 추앙받고 있는 마쓰시타는 회사의 장기적인 목적에 관한 질문을 받았다.
"마쓰시타 전기의 장기적인 목적을 어느 정도 멀리보고 정했습니까?"
그러자 그는 대답했다.
"250년입니다."
"목적을 성취하려면 무엇이 필요합니까?"
"끈기입니다."
아무리 머리가 좋고 재주가 출중한 사람이라도 끈기를 가지고 일에 매달리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는 법이다.
고사성어 중에 끈기가 무엇인지 가르치는 말로 마부작침(磨斧作針)이란 말이 있다.
당나라 시인 이백(李白)의 어렸을 때의 이야기이다.
이백은 아버지의 임지인 촉(蜀) 땅의 성도(成都)에서 자랐다. 그때 훌륭한 스승을 찾아 상의산(象宜山)에 들어가 수학했는데 어느 날 공부에 싫증이 나자 그는 스승에게 말도 없이 산을 내려오고 말았다. 집을 항해 걷고 있던 이백이 계곡을 흐르는 냇가에 이르자 한 노파가 바위에 열심히 도끼를 갈고 있었다. 소년 이백은 그것이 궁금해서 노파에게 물었다.
"할머니, 지금 뭘 하고 계세요?"
"바늘을 만들려고 도끼를 갈고 있다."
"그렇게 큰 도끼가 간다고 바늘이 될까요?"
"그럼, 되고 말고. 하다가 중도에 그만두지만 않는다면."
이백은 '중도에 그만두지만 않는다면' 이란 말이 마음에 걸렸다. 소년 이백은 여기서 생각을 바꾸었다. 그는 노파에게 공손히 인사하고 다시 산으로 올라갔다.
그 후 이백은 마음이 해이해지면 바늘을 만들려고 열심히 도끼를 갈고 있던 그 노파의 모습을 떠올리곤 분발했다고 한다.
쌀가게를 하던 청년 정주영은 사업에서 성공을 거두었으나 쌀가게를 접어야 했다.
1939년 2월, 일제는 한국 쌀의 만주, 중국 등지로의 반출을 제한하고 8월에는 미곡 최고판매가격제를 실시하더니 그해 12월 말에 가서는 급기야 쌀의 자유판매를 전면금지하고 배급제를 실시했다. 따라서 정주영은 경일상회 간판을 내건 지 3년이 못 돼서 쌀가게의 문을 닫게 된 것이다.
새로운 사업을 궁리하던 정주영은 1940년 2월 어느 날, 인생에 전기를 마련해 준 사람을 만나게 된다. 이을학(李乙學) 씨였다. 그는 정주영이 일하던 쌀가게의 단골손님이었는데, 서울에서 가장 큰 경성 서비스 공장의 직공으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는 새로운 사업을 궁리하고 있는 정주영에게 이런 제안을 건넸다.
"아현동에 ‘아도서비스(아도서비스란 애프터서비스의 일본식 발음)’라는 자동차 수리공장이 있는데, 그걸 한 번 해보지 그래요?"
그 공장이 최근 매물로 나왔다는 것이다.
"나는 자전거라면 쌀 배달하느라 도사같이 타지만 자동차는 전혀 몰라요."
정주영의 대꾸에 그는 다시 말을 이었다.
"자동차 수리 공장이 뭐 그리 어려운 건 아니라오. 만일 당신이 그 공장을 한다면 내가 직공들도 모아드리리다."
그렇게 해서 정주영은 자동차 수리공장인 '아도 서비스(Art Service)'를 창업했다.
자동차 수리 공장을 세운 정주영은 꿈에 부풀어 있었다. 그 동안 모아 두었던 돈으로 공장을 인수한 정주영에게 공장은 너무도 소중한 것이었기에 하루 종일 일에만 열중했다. 그는 낮에는 영업을 하고, 밤에는 기술자들 보조를 하면서 자동차에 대한 지식을 익혀나갔다.

빈대에게서 교훈을 얻다

그러나 부푼 꿈을 안고 시작한 공장은 문을 연지 한 달도 되지 않아서 불이나 잿더미가 돼버렸다.

그날 밤, 두 기술자와 함께 밤늦도록 칠일을 배우며 같이 있었는데, 칠일을 끝내더니 두 기술자는 집에 들어가 자겠다며 가고 나는 숙직실에서 자게 되었다. 새벽에 일어나 세수할 물을 데울 불을 피우려고 옆에 있던 신나통을 집어 화덕에 조금 부었는데, 그 순간 화악, 불길이 신나통으로 옮겨 붙어버렸다. 들고 있던 신나통에 불이 붙었으니 본능적으로 불붙은 신나통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순식간이었다. 오래된 목조 건물인데다 오랜 세월 기름으로 절은 공장이니 오죽 잘 탈까! 그야말로 삽시간이었다.
그 시절 귀하디귀한 전화통을 집어 들어 유리창을 깨고 뛰쳐나와 불에 타 죽는 것만 면했지, 공장도, 수리를 맡아놓았던 남의 자동차도, 모두 다 태워버리고 말았다. (정주영, '이 땅에 태어나서', 솔, 1998)
→이 인용부분은 (월간조선 1998년 5월호) 아산과의 인터뷰/ '결단은 칼처럼, 행동은 화살처럼'에도 나오는 부분입니다.

정주영은 겨우 목숨을 건졌지만 공장은 전소되었고, 수리를 끝낸 고객의 자동차들까지 몽땅 타버리고 말았다. 공장인수 자금도 빚이었는데, 외상으로 들여놓은 부속품 값, 고객의 자동차 값이 합쳐져 모두 빚더미로 불어났다.
갚아야 할 돈은 헤아릴 수 없이 많았기에 빚을 얻고 또 얻을 수밖에 없었다. 돈을 빌리려고 이리 저리 뛰어 다니고 다시 공장을 세우기 위해 허가를 받으려는 노력이 계속되었다. 하지만 돈이 잘 모이지 않았고 공장을 새로 허가받는 것도 어려웠던 정주영은 절망에 빠진 상태였다.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가 잠을 청했지만 쉽사리 잠을 청할 수 없었던 정주영은 그렇게 누워 막노동할 때 보았던 '빈대의 모습'이 떠올랐다.

네 번째 가출로 인천 부두에서 막노동을 하던 시절. 그 곳의 노동자 합숙소는 빈대들의 천국이었다. 정주영은 온몸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 빈대 때문에 잠을 설치기 일쑤였다. 그래서 정주영은 꾀를 내어 커다란 탁자 위에 올라가 자기로 했다. 하지만 하루 정도만 괜찮았을 뿐 빈대들은 탁자에 기어 올라와 다시 물어뜯었다. 그래서 정주영은 탁자 다리 밑에 물을 담은 양재기를 하나씩 두기로 한 것이다. 그러면 빈대가 올라오다 미끄러져 모조리 물에 빠져 죽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빈대들이었다. 예상과 달리 이틀쯤 지나자 빈대들이 또다시 물어뜯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도대체 어떻게 빈대들이 그릇의 물을 피해온 것일까?"

궁금해진 정주영은 주위를 자세히 살펴보다 깜짝 놀랐다. 물이 담긴 양재기 때문에 접근하는 것이 어려워지자 빈대들은 사람을 물기 위해 벽을 타고 천장으로 올라간 다음, 사람을 목표로 뚝 떨어져 목적을 달성하고 있는 것이었다.
정주영은 빈대의 그 포기하지 않는 정신에 혀를 내둘렀다.

"그래, 이런 하찮은 빈대조차도 자신이 이루고 싶은 일을 쉽사리 포기하지 않고 여러 가지 방법을 생각하여 다시 도전하는데, 하물며 사람인 내가 이렇게 쉽게 포기해서 되겠는가! 세상에 이루지 못할 일은 없는 거야. 해보고 안 되면 다른 방법을 생각해보고 다시 시도하는 거야. 성공. 그것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도전하는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소중한 선물이야."
일이 쉽사리 풀리지 않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어질 때,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최악의 순간, 정주영은 이 빈대가 주는 교훈을 떠올리며 다시 주먹을 불끈 쥐고 일어설 수 있었다.

정주영에게는 실패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실패로부터 배우지 못하는 것을 문제로 여기고 있음도 빈대의 일화에서 잘 알 수 있다.
본격적인 한국 경제의 막을 열었던 '영원한 비전의 사람' 정주영은 "해보기나 했어?"라는 말을 자주 했다.
즉 그는 실패로부터 다시는 실패하지 않겠다는 새로운 각오와 방법을 스스로 익혀 나갔던 것이다.
가금현 기자 ggh7000@hanmail.net
가금현 기자 입니다.
긍정적인 사고로 의리를 지키며 살고싶다.
술은 웃음소리가 밖에까지 들리도록 마셔라!
내가 그자리에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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