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장군의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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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장군의 귀환
-안창현 CTN논설위원
  • 입력 : 2021. 08.16(월) 09:50
  • 안창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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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창현 CTN논설위원
[칼럼/CTN]우리 민족의 영웅 중 한 분인 여천(汝千) 홍범도(洪範圖) 장군이 그토록 보고 싶던 광복 76년 만에 고국에 돌아왔다.

제76주년 광복절인 2021년 8월 15일 먼 이국땅인 카자흐스탄에서 홍범도 장군은 유해가 되어 귀국했다.

홍범도 장군은 1910년 일제 강점이 시작되자 만주로 건너가 독립군 양성에 힘을 쏟는 한편, 함경북도 경원의 일본군 수비대 습격에 이어 1919년 3.1만세운동 이후 400여 명의 독립군 부대를 편성하고 국내로 잠임해 갑산, 혜산, 자성 등에서 일본군을 급습해 전공을 올렸다.

이어 만포진 전투에서 일본군 70여 명을 사살하는 활약을 했다.

이에 반격에 나선 일본군 제19사단이 남양수비대와 함께 독립군 본거지인 봉오동을 공격하자 700여 명의 독립군을 지휘해 3일간 일본군 157명을 사살, 독립군 최대의 승리를 거두었다.

홍범도 장군은 같은 해 김좌진 장군과 함께 청산리전투도 승리로 이끄는 전공을 거두었다.

남의 나라에서 독립운동을 펼치며 대한독립을 위해 목숨 걸고 싸우던 홍범도 장군은 고국의 해방을 보지 못하고 1943년 76세를 일기로 생을 마쳤다.

홍범도 장군은 독립군들과 함께 만주에서 러시아 스랍스케, 이르크츠크를 거쳐 1937년 스탈린의 한인 강제 이주 정책에 따라 카자흐스탄의 크질오르다로 강제로 이주하며 나라 잃은 민족의 설움을 겪었다.

카자흐스탄에서 고려인들의 정신적인 지주가 되어 모두의 가슴 속에 살아있다.

정부는 8월 16일과 17일, 이틀간 홍범도 장군 추모일로 지정하고 18일 대전 국립현충원에 안장한다.

홍범도 장군의 유해 봉환과 함께 아직도 차가운 이국땅에서 고국을 그리는 독립운동가의 귀환을 서둘러야 한다.

특히, 한일 강제합병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하얼빈역에서 처단하고 중국의 뤼순감옥에서 순국한 안중근 의사의 유해도 반드시 찾아내 국내로 모셔야 할 의무를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나라가 어렵고 힘들 때, 나라를 위해 목숨을 초개같이 버린 많은 독립운동가가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의 번영과 평화가 있다는 것을 언제나 상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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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창현 기자 luckiz12345@naver.com안창현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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