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김대중(DJ)과 통합의 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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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김대중(DJ)과 통합의 리더십
-안창현 CTN논설위원
  • 입력 : 2021. 08.18(수) 19:11
  • 안창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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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창현 CTN논설위원
[칼럼/CTN]8월 18일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12주기를 맞이해 그의 통합의 리더십을 떠올린다.

김대중(DJ) 전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입지전적인 중요한 인물이다.

1971년 제7대 대통령선거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과 맞서 출마했지만, 패배했다.

당시에 군사독재정권의 극심한 부정선거 의혹은 ‘선거에 이기고 투표에 졌다’라는 말이 널리 인구에 회자될 정도였다.

이후 DJ는 미국, 일본에서 박정희 독재정권에 맞서 민주화운동을 펼치다 일본의 한 호텔에서 중앙정보부에 의해 납치되기도 했고, 1980년 서울 봄 당시에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 내란음모죄로 체포되어 사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는 등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증인이었다.

이후, 1982년 12월 형집행정지로 석방되어 미국으로 건너갔다가 1985년 귀국해 김영삼 전 대통령과 함께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 공동의장직을 맡아 1987년 전두환 독재정권으로부터 대통령선거 직선제를 끌어냈다.

1987년 12월 대선에서 재야와 제 민주화 세력의 열화와 같은 김영삼, 김대중 단일화 요구에도 결국 단일화를 이루지 못하고 여당인 민정당 노태우 후보가 어부지리로 당선되는 실패를 맛보았다.

1992년 12월 제14대 대통령선거에서도 여당인 민정당과 김영삼의 통일민주당, 김종필의 신민주공화당 등 이른바 3당 야합으로 출범한 민주자유당의 김영삼 후보에게 패해 국회의원직을 사퇴하고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오랜 인고의 세월을 거쳐 DJ는 1997년 10월 충청도를 지역 기반으로 한 김종필의 자유민주연합과 야권 후보단일화를 이루어 12월 15대 대통령선거에서 당선, 대한민국 정치사에서 최초의 평화적 여야 정권교체를 이루었다.

당시 호남을 기반으로 DJ의 동교동 계를 중심으로 한 새정치국민회의와 충청도 김종필의 자유민주연합의 절묘한 통합으로 김대중은 일생의 염원이었던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DJ는 대통령에 당선된 후, 국민 통합에 심혈을 기울였다.

박정희, 전두환 독재 정부 관련 인사에 대한 정치적인 보복을 하지 않았고, 그 세력을 통 크게 껴안음으로써 통합의 리더십을 보여주었다.

2000년에는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 초대로 평양을 방문, 전 세계에 중계된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6·15남북공동선언으로 남북평화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일생에 걸쳐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인권향상, 남북평화와 화해의 노력을 인정받아 2000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대한민국에 DJ가 뿌려놓은 민주주의와 평화, 화합의 씨앗은 어떻게 되었을까?

아직도 대한민국은 이념적으로 좌와 우, 지역과 계층, 연령대별로 극심한 편 가르기가 진행형이다.

내년 3월에 있을 제20대 대통령선거에 출마할 여야 후보만 어림잡아 20명이 넘는다.

과연 이들 가운데 DJ의 통합의 리더십을 갖고 나라와 민족을 이끌어갈 사람은 누구일까?

국민의 선택에 따라 앞으로 5년간 대한민국의 운명을 판가름하게 될 것이다.

이번에는 DJ가 뿌린 씨앗에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화합, 평화의 싹이 돋아 꽃을 활짝 피울 지도자가 나오기만을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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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창현 기자 luckiz12345@naver.com안창현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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