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아버지를 찾아 가족들 곁으로

문영숙의 꼭 알아야 할 항일독립운동가 최재형
<7> 아버지를 찾아 가족들 곁으로
  • 입력 : 2021. 08.17(화) 11:32
  • 가금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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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영숙의 꼭 알아야 할 항일독립운동가 최재형/CTN] 6년 간의 선원생활 경험을 바탕으로 최재형은 선장 친구 회사인 모르스키 상사에서 4년 동안 일을 하면서 러시아 상인들과 돈독한 인맥을 형성한다.

최재형에게 이때의 경험은 동양의 카네기라 부를 정도로 부를 쌓게 되는 발판이 마련되는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스무 살을 넘긴 최재형은 4년 동안 번 돈을 가지고 드디어 아버지를 찾아간다. 열한 살에 집을 나와 10년 만에 가족을 찾아가는 최재형은 그동안 얼마나 가족이 그리웠을지 상상하고도 남는다. 아버지와 형은 물론 심하게 구박했던 형수도 그리웠을 것이다.

최재형은 가출 후 자신을 구해준 선장을 만났던 곳, 포시에트 항구에 가서 말을 빌려 타고 지신허를 찾아갔다.
필자의 소설 <독립운동가 최재형>에서 가족을 찾아가는 최재형을 다음과 같이 풀어냈다.

재형은 눈길을 걸어 학교에 다니던 길을 말을 타고 달리니 온갖 감회가 새로웠다.

재형이 말을 타고 달리는 길은 겨울에 눈이 발목까지 쌓였을 때 버선은커녕 신발도 없이 맨발로 걷던 길이었다. 짚단을 들고 발을 녹이며 걸었던 그 길을, 말을 타고 달리며 재형은 그런 환경에서도 얼어 죽지 않고 살아냈다는 게 꿈만 같았다.

이윽고 지신허 마을에 도착했다. 그러나 동네는 썰렁하고 집들도 보이지 않았다. 옛 토굴 터에는 깨어진 세간들이 나뒹굴었다. 재형은 아버지와 식구들이 잘못되었을까 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가난을 이기지 못하고 돌아가신 것은 아닐까. 재형은 인적을 찾아 다시 말을 몰았다. 다행스럽게도 한인들은 대부분 얀치혜라는 곳으로 이주를 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재형은 다시 말을 타고 얀치혜로 달렸다. 끝없는 평원을 한참 동안 달려 얀치혜에 도착하니 제법 너른 밭에 옥수수와 수수 잎이 검푸른 파도처럼 출렁거렸다. 이곳은 지신허보다 땅이 기름져 보였다. 집들도 제법 모양새를 갖춰서 지신허에서 살던 움집이 아니었다. 밭에서 일을 하고 있던 노인이 말을 타고 나타난 재형을 보고 밭둑으로 걸어 나왔다. 아버지는 어디 살고 계실까. 오랜만에 한인들을 보니 재형은 아버지를 만난 것처럼 가슴이 뛰었다. -중략-

최재형은 얀치혜에서 아버지를, 형과 형수를, 그리고 조카들을 만난다. 최재형은 소년에서 청년으로 외모뿐만이 아니라 정신까지도 완전히 환골탈태를 한 상태였다.
최재형은 그동안 번 돈으로 집을 새로 짓고, 가축을 사서 집안을 부흥시킨다.

영국의 왕립 지리학회 여행가 이사벨라 버드 비숍여사가 쓴 <조선과 그 이웃나라들>이란 책에는 얀치혜는 비옥한 검은 흙으로 모든 곡식과 식물들이 잘 자라는 곳이며, 땅은 깨끗하게 경지정리가 되어 있고, 한인들의 촌락은 당시 조선과 비교하면 매우 강력한 지배층의 저택같은 집들이 많다고 쓰고 있다. 큰 촌락은 보통 92만 평의 비옥한 농지를 갖고 있으며, 약 140여 세대가 거주한다고 밝히고 있다.

비숍여사가 얀치혜를 방문했던 때가 1890년이니 최재형이 대저택을 짓고 개인농장을 만들어 농사일에 전념하여 마을이 부흥했던 때 였음을 알 수 있다.

그 후 최재형은 본격적으로 통역관으로 일을 하게 된다. 최재형은 얀치혜에서 최초로 러시아 정교회 학교를 다녔고, 그 후 6년 동안 선장 부인으로부터 러시아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을 정도로 배운데다, 블라디보스토크에 돌아와 상사원 생활을 하면서 직접 러시아 사람들을 상대했으니, 최재형만큼 러시아어를 잘하는 사람은 아마도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러시아 문화까지 익혔기 때문에 누구보다 유능한 통역원이 될 수 있었다.

때마침 러시아는 동방정책으로 블라디보스토크에 많은 군대들이 주둔하게 되면서 최재형은 해군소위, 경무관의 통역등 러시아의 군부와 치안 당국의 통역으로 활동하게 된다. 덕분에 최재형은 러시아 인들로부터 더욱 더 신뢰를 얻게 되었다.

박환 교수의 저서 <시베리아 한인민족운동의 대부 최재형>에는 박은식 선생이 쓴 <한국독립운동지혈사>에 “최재형은 러시아 문물에 익숙하여 러시아 관원의 신임을 얻었으므로 우리 겨레의 노동자를 많이 비호하였다. 두 번이나 러시아의 수도 페테르부르크에 가서 러시아 황제를 뵙고 훈장을 받았으며” 라고 최재형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한인들은 러시아의 동방정책에 주요한 노동력을 제공했는데 똑같은 일을 해도 한인들은 러시아의 노동자들에 비해 턱없이 낮은 임금을 받고 있었다. 최재형은 이런 사정을 헤아리고 한인들을 차별하는 러시아인들에게 항의를 해서 한인들의 처우를 개선해준다. 그 후부터 한인들은 당연히 최재형을 의지하게 되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최재형을 찾아와 의논했다고 한다.

그 후 최재형은 얀치혜 남도소의 서기로 뽑혀 러시아의 공적인 업무를 보게 되는데, 최재형은 3년 동안 문서정리와 사무처리를 하면서, 러시아의 공무를 담당하는 중요한 인물이 된다.

-참고도서 박환교수의 <시베리아 한인 민족운동의 대부 최재형>
<계속>
가금현 기자 ggh70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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