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교육가로 32개의 한인 학교를 세우다

문영숙의 꼭 알아야 할 항일독립운동가 최재형
<10> 교육가로 32개의 한인 학교를 세우다
  • 입력 : 2021. 11.08(월) 09:43
  • 가금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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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영숙의 꼭 알아야 할 독립운동가 최재형/CTN] 박환 교수의 저서 ⟪시베리아 한인민족운동의 대부 최재형⟫에 있는 독립신문
1920년 5월 15일자 <최재형 약력>에 보면 다음과 같이 기술되어 있다.

"아령에 있는 한인의 교육은 처음 최재형씨의 편달을 받아 일어난 것이요, 최재형씨가 거주하는 얀치혜는 아령의 한인 거주지 중에서 제일 먼저 러시아 교육을 받았다"

라고 하여 최재형이 재러 한인교육을 처음으로 강조하며 한인교육을 일으킨 장본인이라고 밝히고 있다.

얀치혜 지역에 한인이 이주하기 시작한 해는 최재형이 태어나던 1860년대 부터인데, 처음에는 열악한 경제사정으로 교육은 생각할 겨를도 없을 만큼 생계가 어려웠다. 러시아 지방당국은 1883년에 얀치혜 지역에 러시아어 학교를 설립하고 한인자녀들을 교육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러시아화 교육은 효과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실제로 학령기가 된 아이들을 모집할 때, 한인들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 이를 기피하거나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 심지어 자기 자식들을 러시아 학교에 보내기를 꺼려해서 남의 아이를 대신 보내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최재형이 도헌에 취임하기 전인 1891년, 최재형은 얀치혜에 정교회학교를 설립했는데, 니콜라예프스키 소학교라고 불린 이 학교는 한인마을에 세워진 대표적인 러시아식 한인학교였다. 최재형은 이 학교의 가난한 학생들을 위하여 2,000 루블을 후원했다.

얀치혜 한인들 중에 니꼴라예프코에 소학교를 졸업한 많은 학생들은 상급학교에 진학했다. 최재형은 이들이 상급학교에 진학할 수 있도록 장학금을 주었는데, 장학금을 받고 사범학교에서 공부한 졸업생들은, 후에 니꼴라예프코 모교에 돌아와 교사로 활동했다. 또 다른 학생들은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러시아군 장교로서 러시아 사회에 공헌하기도 했다.

1893년 도헌에 임명된 직후 최재형은 향산사에 러시아 정교회와 학교를 설립했다. 또 얀치혜에 우신학교를 설립하고, 교장이 되어 도헌 생활을 하면서 학교도 운영했다.

러시아 정부는 이러한 최재형의 공로를 인정하여 1902년 교회헌당식이 거행되었을 때 최재형에게 금메달 훈장을 수여했다. 또한 니꼴라예프스코예 소학교는 1899년 하바롭스크에서 개최된 박람회의 교육부분에서 장려상을 수상했고, 연해주에 있는 학교들 중에서 최우수 소학교로 평가를 받았다.

이후에도 최재형은 계속적인 교육사업으로 한인들이 거주하는 마을마다 정교회 교구학교를 설립하여, 1890년대 말에는 연해주 지역의 32개 한인마을에 러시아 소학교가 설립되었다.

또한 최재형은 얀치혜에 6년제인 고등소학교를 설립하여 학생들의 교육에 전력했으며, 고등소학교를 성공적으로 졸업한 학생들 중에 우수한 학생을 골라, 블라디보스토크, 우수리스크, 블라고베센스크, 이르쿠츠크, 톰스크 및 기타 지역에 유학을 보냈다. 최재형은 이 유학생들 중에서 가장 우수한 학생 한 명을 선발해, 도헌으로 받는 3000루블의 봉급을 전부 은행에 넣어두고, 그 이자로 매년 러시아에 유학을 보냈다고 한다.

그 결과 다수의 학생들이 러시아의 모스크바나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떠났는데 대표적인 인물로 한 명세, 김 미하일 미하일로비치, 최 레프 페트로비치, 김 로만 이바노비치, 김 야코브 안드레예비치 이다.

최재형의 이러한 교육장려 활동은, 한인들에게 희망의 씨앗이 되었고, 한인들로부터 더욱 더 존경을 받게 되었다. 한인들은 최재형의 사진을 집에 걸어놓을 정도로, 그를 존경했다고 한다.

그러나 점점 늘어나는 한인들의 교육을 최재형 혼자서 감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서 최재형은 한인들과 함께 교육기금을 만들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그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키로 했다.

마침 그 무렵 러시아 극동에 많은 숫자의 육군 및 해군이 주둔하게 된다. 최재형은 이 군인들이 필요로 하는 식량, 군복, 건재등을 공급할 목적으로, 회사를 설립하여 교육기금을 만들 생각이었다.

이로서 최재형은 교육자에 이어 동양의 카네기라 칭할 만큼 거대한 부를 이루는 기업가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최재형은 이처럼 한인마을마다 교회와 학교 건물을 지었고, 학교 교사와 정교회 사제를 위한 건물도 지었다.

최재형이 얀치혜 마을에 벽돌로 지은 건물들은 매우 견고하고 넓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최재형이 세운 많은 학교들은 1937년에 고려인들이 스탈린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를 당한 후,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았기 때문에 건물은 이미 사라졌고 건물터에 나뒹구는 붉은 벽돌들이 그 자취를 증언하고 있다.

필자가 2012년, 우수리스크를 방문했을 때 한인들이 살던 마을에 있는 학교를 방문한 일이 있다. 물론 그 학교는 당시 최재형이 지은 학교는 아니었지만, 교장실 옆에 조촐하게 고려인박물관을 만들어 당시 고려인들이 쓰던 농기구와 생활집기들을 전시해놓고 있었다.

그 후 2019년 필자가 MBC 댜큐팀과 함께 촬영을 위해 추카노보 마을 (구 얀치혜)에 갔을 때 마을 사람들의 안내로 당시 학교터를 찾아갔다. 무성한 수풀 속에 빨간 벽돌이 수없이 널브러져 있었고 학교 건물의 기단도 그래도 보존되어 있어서 흥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계속-

<참고서적> 박환 교수의 <시베리아 한인 민족운동의 대부 최재형>
문영숙의 <독립운동가 최재형>
가금현 기자 ggh70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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