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이범윤을 만나 신분의 격차를 느낀 최재형

문영숙의 꼭 알아야 할 항일독립운동가 최재형
[15]이범윤을 만나 신분의 격차를 느낀 최재형
  • 입력 : 2022. 04.11(월) 14:27
  • 가금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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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영숙의 꼭 알아야 할 항일독립운동가 최재형/CTN]
이범윤을 만나 신분의 격차를 느낀 최재형, 조선 국왕의 대리인으로 행동하는 이범윤을 적극적으로 지원.

최재형과 함께 연해주 최초의 독립단체인 동의회를 조직한 중요한 인물이 있었다.

바로 간도관리사였던 이범윤이었다. 간도라는 말이 나오면 자동적으로 따라붙는 이름이 바로 이범윤이다.

그러나 이범윤의 실제사진은 없다. 국립묘지에 묘가 있지만, 일제의 감시가 심해 유해는 몰래 화장했기 때문에 허묘라고 한다.


이범윤은 러시아 공사 이범진과 같은 학렬로 이범진의 친척 동생뻘이 되었다. 이범윤은 자기 휘하 부대 사포대원 500여 명을 이끌고 러일전쟁에 참여했다.

러일전쟁이 끝난 후 이범윤 부대는, 1905년 청나라의 강력한 철수 요구를 받은 고종으로부터 소환명령을 받았다. 이범윤은 일본이 간도를 점령하자 고종의 소환에 응하지 않고, 1905년 11월 초에 함경도 무산, 회령, 종성, 온성, 경원 등지를 경유하여, 훈춘에 잠시 머물렀다가 1906년 초 다시 청나라의 퇴각 요구로 부하들을 이끌고 얀치혜로 가서 정착하게 되었다.

그 후 이범윤은 만주군 총사령관이었던 리네비치 장군을 찾아가서 러일전쟁에서 공로를 세운 대가로 약 200-500 명으로 추정되는 군인과 가족을 포함한 약 1000명의 한인들에게 토지를 분배해 줄 것과, 무상으로 거주권을 발급해 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일본과의 외교적인 마찰을 우려한 러시아 당국은, 이범윤의 요청을 호의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범윤은 당시 얀치혜 도헌(군수)로 있던 최재형을 찾아갔다.

당시의 일본 측 보고서를 살펴보면

'최재형은 일찍이 러시아 파라고 칭하는 이범윤이 간도관리사가 되어 마패를 가지고 부임하자 러일전쟁 이후 이를 받아들여 식객으로 삼았다'고 되어 있다.
최재형은 이범윤에게 신임장을 만들어주었다. 신임장의 내용은 재러한인들에게 이범윤 부하들의 의복과 식량등을 지원해 줄 것을 요청하는 내용이었다. 최재형의 든든한 후원으로 이범윤은 연해주 각지를 순회하며, 재러 동포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고, 의병부대를 조직하기 위한 군자금을 모금할 수 있었다. 재러 한인들은 자신들이 대부로 섬기고 있는 최재형의 신임을 받고있는 이범윤에게 많은 자금을 내놓았고, 의병모집에도 응했다. 당시 이범윤은 조선 국왕의 대리인임을 강조하면서, 최재형의 적극적인 지원을 얻고자 했는데, 이범윤이 동포들에게 보낸 통문을 보면 그 정황이 잘 나타나 있다.

'대황제 폐하께옵서 나를 북간도 관리사로 임명하셨다. 따라서 나는 하바롭스크 순무사와 교섭하고 각 지역에 창의서라는 단체를 조직해 대한독립을 회복할 터이니, 강동의 여러 동포는 주의하여 조국을 회복하오. 선릉도 대한강산이요, 인종도 대한인이니 아무리 타국에서 포식한들 어찌 조국을 모르리요, 차후로 조선인 홍범도를 의병대장으로 하고, 그에게 자금과 무기를 모을 것을 지시했다. 모든 조선인은 그가 무기와 탄약을 구하는 일에 순응해야 할 것이다. 연해주 지방의 모든 조선인은 우리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연합해야 한다. 조국을 구하는 데 큰 공을 세우는 자는 조선으로 돌아가는 대로 큰 상을 받게 될 것이다. 황인은 언제나 황인이며, 남의 나라에 아무리 오래 살아도 백인이 될 수 없다는 점을 명심하라.'
단기 4201년 8월 20일 판무관 이범윤

또한 이범윤이 연해주에서 의병활동을 전개하고 있던 김병연에게 보낸 한글 편지가 있는데 내용은 아래와 같다.

‘귀하의 편지는 잘 받았습니다만 직접 만나 뵙지 못하는 점 매우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저의 일은 예전과 다름없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창의서의 일은 어떻게 되어 가는지 전해 주십시오.
귀하의 명성은 극동 전역에 퍼져 있습니다. 대업을 조만간 완성하기 위해 저는 귀하께 큰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저는 이곳 하바롭스크에서 주지사와 친교를 맺고 있습니다. 아직 자세하게 밝힐 수는 없지만 무기에 관하여 러시아 관리들과 협상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물론 비밀리에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저는 자금이 부족한 상태입니다. (.....)

-1909년 음력 9월 8일 이범윤 -

위의 글에 나타난 것처럼 이범윤은 조선 국왕의 대리인으로 행동하는 동시에, 하바롭스크 지사 등 고위 책임자들과의 교분을 강조하며, 러시아 지역의 한인들에게 국권회복운동에 적극 동참할 것을 요구했다. 참전하면 국내로 돌아가서 포상할 것임을 천명하고 있었다. 이처럼 이범윤이 조선 국왕의 대리인으로 행동했기 때문에, 최재형도 이범윤을 예의를 갖춰 대하고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최재형은 러시아에서는 내로라하는 자산가이자 한인들의 지도자였지만, 출신성분은 노비였기 때문에 양반은 물론 더더구나 황손인 이범윤에게 신분의 격차를 하늘과 땅처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참고서적 ; 박환 저 <시베리아 한인민족운동의 대부 최재형>
가금현 기자 ggh7000@hanmail.net
가금현 기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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