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진 틀밖으로 나오라

김영희 교육에세이
정해진 틀밖으로 나오라
김영희 CTN 객원기자
  • 입력 : 2024. 06.10(월) 08:52
  • 김영희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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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 CTN/교육타임즈 객원기자
[김영희 교육에세이/CTN] “아무리 그래도 졸업장은 있어야 하잖아요. 이게 무슨 날벼락이래요”
몇 해 전 대학생 엄마가 상담해 왔다. 자녀가 S대학교 소프트웨어학과에 수시 입학해 대학원까지 보장받은 케이스였다. 1학년 한 학기를 무사히 넘기던 어느 날, 갑자기 애가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선포했단다. 엄마는 대학 졸업장 없이 살 아들만 생각하면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다고 했다. 아들과 실랑이를 벌이다 문의한다며 엄마는 걱정스레 말했다.
학벌을 중시하는 우리 사회에서 대학을 중도하차 하려는 아이를 반길 부모는 없으리라. 명문 대학을 장학생으로 입학했는데 말이다. 애가 정말로 중퇴한다면 그간 받은 장학 혜택마저 다 돌려줘야 하는 입학 조건이었다.
아이는 컴퓨터 도사였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RPG 게임을 직접 만들었고, 고등학교 때 소프트웨어 컴퓨터 개발 언어인 ‘자바’ 등을 혼자 섭렵했다. 한국정보 올림피아드 대회 등의 상을 휩쓸고 교내 컴퓨터 관련 프로그램도 도맡았다. 고교시절 그의 블로그를 보고 모 회사에서 인터넷 강의 요청이 와 컴퓨터 관련 30강 강의도 했다.
“대학에 가니 전공과목은 이미 다 아는 거라 더 이상 배울 게 없고, 교수님이 거꾸로 아들한테 묻는대요.”
엄마의 염려와는 달리 아이는 누군가의 도움 없이 스스로 성장하는 수재였다. 사실 수재도 일종의 고급 장애라더니 또래들과의 성적 차이나 심적 괴리감으로 어려움도 있으리라. 그가 중퇴하려는 마음 저편에 여러 이유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첫째는 고교 때부터 가진 창업의 꿈을 이루기 위해 대학 입학 직후, 세계맥주 추천 서비스를 공동 창업했다. 다음으로 수업 중에 교수에게 여러 질문을 해대서 송구스럽고, 그후 교수가 과제의 난이도를 대폭 높였다는 점이다. 예기치 않게 과 친구들에게 민폐를 끼친 꼴이 되었다. 친구들은 어려운 과제를 푸느라 낑낑대며 틈만 나면 아이를 불러내 도움을 요청하곤 했다.
아들에 관한 여러 정황을 말하며 어머니는 용감히 새판 짜는 아들의 미래가 두려웠다. 먼저 그녀를 위로하며 정선주 작가의 “학력파괴자들” 라는 책에 나오는 여러 얘기를 나눴다.
“학교를 박차고 나온다고 누구나 성공하는 게 아니죠. 평소 하고 싶었던 열망이나 꿈이 뚜렷한 아이들이 결국 성공해요. 자제분의 열정과 도전 정신은 최고의 장점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도 고교 때 이미 컴퓨터에 두각을 나타냈다. 하버드 대학 수학과에 입학 후 중퇴하고 친구인 폴 앨런과 창업했듯 그 형태가 상담자의 아들과 거의 흡사했다. 혹시 아는가, 한국의 빌 게이츠가 탄생할 지 모를 일이다. 세계 첨단산업을 주도하는 실리콘밸리에서는 이미 학력 파괴 바람이 드세다. 학력이 아닌 실력의 중요성을 오래 전부터 깨달았기 때문이다. 가장 혁신적인 기업 환경을 가진 회사로 평가받는 구글은 대학졸업장이 없는 직원을 채용하고 있다.
몇 년이 흐른 후, 상담 했던 엄마가 점심 식사를 하자고 연락이 왔다. 27세 된 아들이 같은 회사 능력 있는 여직원과 결혼 날짜를 잡았다며 기뻐했다. 그가 창업한 회사가 나날이 발전했다. 은행과 자산관리 관련 앱을 개발하는데 승승장구해 개발자만도 무려 300여 명에 이른단다. 지금은 모 대기업에서 그 회사를 인수하려고 수백억 원을 투자한 상태다.
사업도 성공하고 결혼도 성사되어 엄마의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다른 아이들이 가지 않은 길을 어렵사리 선택한 아들이 남다른 삶의 전형을 만들어냈다. 그 길은 얼마나 불안하고 힘든가. 그럴수록 모험심과 탐구력이 빛을 발한다. 그걸 극복하는 사람들이 바로 사회를 변화시키는 장본인이 아닐까.
“사실 노심초사했지요. 남들은 다 학교에 잘 다니는데 우리 아들만 엉뚱한 짓을 하고 나서나 싶어서 한날 한시 편한 날이 없었다니까요.”
하지만 영리한 아들은 대학 중퇴 후 부모도 모르게 자기만의 인생살이 준비를 차곡차곡 했다. 그는 공학도이면서도 인문학적 소양까지 높았다. 그의 궁극적 꿈이 영화평론가라니 짐작이 간다. 다양한 책을 어려서부터 접한 그는 지금도 독서광이다. 인터넷 서점에서 구입하는 책들만도 산더미다.
이미 그는 MOOC를 통해 미국 스탠포드 대학 등 강의 수료증도 땄다. MOOC란 ‘온라인 공개 수업(Massive Open Online Course)’을 말한다. 수강 과목 성적이 거의 A+이었다. 그는 미래 인재 조건을 갖추며 스스로 크는 아이에 속했다. 무슨 연유일까? 아이가 어릴 때부터 사이버대에 적을 두고 열렬히 공부하던 엄마의 모습을 보며 자랐다고 한다. 물론 타고난 유전자도 있을테지만 집안의 공부 분위기나 주변 환경 등도 무시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아이는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자라니까.
그렇다. 상담자의 아들은 갓난이 때부터 엄마의 책 읽어주는 소리를 가장 좋아했다. 자장가로 들을 정도였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도 쭉 그랬다. 엄마가 피곤해 책을 대충대충 읽어줄라치면 용케 알아채고 투정부리곤 했다. 이미 수십 번씩 들은 내용인지라 아기가 그 패턴을 기억하고 알아챘던 것이다.
영어는 EBS에서 방영한 '잉글리쉬 카페'를 들으며 독학했다. 부모와 외출했다가도 그 시간이 되면 챙겨 듣길 원해 서두른곤 했다. 초, 중등학교 시절에는 탐정 소설을 쓰고 대학 재학 중 스타트업에 발을 내딛었다. 그런 수많은 에너지가 어디서 나올까. 책과 탐구 속에 담겨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컴퓨터 황제'로 통하는 빌 게이츠도 "내 아이들에게 당연히 컴퓨터를 사 줄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책을 사 줄 것이다."라고 말했다. 컴퓨터보다 책이 어린 시절 꿈과 상상력, 창의력을 키우는 데 더 중요한 무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학교를 배신하고 열정을 찾은 이들은 많았다. 에디슨, 아인슈타인, 라이트 형제, 링컨, 앤드류 카네기, 헨리 포드, 스티브 잡스, 빌 게이츠, 마크 저커버그, 래리 엘리슨, 마이크 탭 등이 모두 중퇴자다. 진정한 창의력은 학교 밖에 있음을 입증한 사람들이다.
이제는 전문가를 넘어선 초전문가 시대다. 앨빈 토플러는 미래에 대한 예측의 중요성을 원시 부족에 비유하여 제시한 바 있다. “아프리카의 원시 부족이 강을 따라 살고 있었어요. 강 상류에 거대한 댐이 지어지는 거예요. 원시 부족은 자식들에게 채로 강에서 물고기를 잡는 법, 카누를 만드는 법, 농사짓는 법을 계속 가르쳤어요. 댐이 만들어지자 원시 부족과 문명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정해진 틀 밖에서 미래사회의 역량을 갖춘다면 현대판 원시 부족이 되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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