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창고] 개자추(介子椎)의 할고봉군(割股奉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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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창고] 개자추(介子椎)의 할고봉군(割股奉君)
- 김춘수 충청탑뉴스·ctn충청교육신문 국장
  • 입력 : 2018. 12.24(월) 10:56
  • 가금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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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수 충청탑뉴스·ctn충청교육신문 국장
[만물창고/ctn]할고봉군(割股奉君)는 허벅지살을 베어 군주(君主)를 모시다는 뜻이다.

개자추는 춘추시대 진(晉) 나라 사람으로 진 문공(중이)이 공자(公子)시절이었을 때 국내 정변(政變)을 피해, 타국(他國)으로 망명(亡命)을 다녔다.

그 시절 개자추는 무려 20여 년 동안 문공을 주군으로 모시고 수발을 들었다.

타국의 망명 중에 개자추는 중이를 수행(隨行)하며 충심(忠心)을 다해 섬겼다.

심지어는 양식(糧食)이 다 떨어져서 먹을 것이 없을 때는, 자신의 허벅지 살을 베어 자신의 허벅지 살로 고깃국을 끓여 주군인 중이의 생명(生命)을 봉양(奉養)할 정도로 충성(忠誠)을 다했다.

여기서 '허벅지 살을 베어 주군을 섬긴다'는 뜻의 '할고봉군(割股奉君)'이라는 고사성어가 나왔다.

이어 오랜 망명 생활 끝에 군주로 즉위한 중이는 후에 춘추오패(春秋五覇)의 한 사람이 되는데 이가 바로 진문공이다.

권력(權力)을 손에 잡은 중이는 진문공으로 즉위(卽位)했고 즉위를 하자, 먼저 자신의 망명생활을 수행하며 도운 신하들을 빠짐없이 모두 관직(官職)에 봉했다.

하지만 개자추에게만 어떤 공도 나누어 주지 않았고, 어떤 관직에도 봉하지 않았다.

이에 개자추는 집으로 돌아와 홀어머니에게 말했다.

"주군께서 이제라도 돌아와 군주의 자리를 오른 것은 하늘의 뜻입니다. 그런데 몇몇 인사들이 그것을 자신의 공로(功勞)라고 서로 헐뜯고 싸우고 있으니 이것이 어찌 공로와 상을 탐내고 군주를 속이는 짓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정말이지 그런 자들과 함께 일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숨어 살기로 결심(決心)했습니다."

이에 아들의 마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어머니도 아들과 함께 산속으로 숨어버렸다.

이때 개자추의 충정(忠情)을 아깝게 여기고 또 그의 처지를 아는 사람들이 문공에게 전하니 그때서야 문공은 "내가 군왕이 되어 편안하게 살 수 있게 된 것은 누구보다도 개자추의 공이 큰데, 내가 그를 비굴(卑屈)하게 만들었구나"라며 급히 사람을 보내 개자추의 행방(行方)을 찾게 했다.

마침내 개자추가 면산에 어머니와 함께 숨어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 문공이 몸소 면산으로 가서 개자추를 찾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이때 면산에 불을 지르면 효자(孝子)로 이름난 개자추가 어머니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밖으로 나올 것이라는 말에 불을 질러 찾았지만 개자추는 어머니를 끌어안은 채 죽은 뒤였다.

문공은 땅을 치며 후회(後悔)했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이에 문공은 매년 면산에 불을 지른 날(청명절 하루 전날)을 한식(寒食)날로 정해 더운 음식을 먹지 못하게 했다.

한식(寒食)은 여기서 유래한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누군가는 나를 위해 헌신(獻身)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를 외면(外面)하면 반드시 후회 한다는 사실(事實)을 알았으면 좋겠다.
가금현 기자 ggh70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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