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소리로 읽는 독서, 뼈에 새기는 독서

리채운의 신사임당의 자녀교육법
[16] 소리로 읽는 독서, 뼈에 새기는 독서
  • 입력 : 2022. 05.24(화) 10:04
  • 가금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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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채윤의 신사임당 자녀교육법/CTN]옛날의 독서는 눈으로 읽지 않고 소리로 읽는 독서였다. 소리로 읽은 글 읽기의 울림은 몸을 진동 시키고 뼈에 새겨진다. 뼈에 새겨진 소리를 통해 우리는 자신의 영혼을 만난다.

그렇다면 왜 옛 사람들은 글을 소리 내어 읽었을까?
인류는 글을 발명하기 전에 말로서만 소통을 해왔다. 또한 인류는 수천 년간 책을 암송을 통해서 전달받아왔다. 많은 종교의 경전이나 고전들, 모든 부족의 신화와 전설 등이 암송을 통해서 세대에서 세대를 건너 이어져왔다.

그것은 양의 동서를 막론하고 마찬가지다. 서양의 대표적 고전인 <일리아드>, <오디세이>도 암송과 구술을 통해 계승되었다.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서당 교재였던 <소학>의 첫 번째 장을 보면 ‘밤이면 장님으로 하여금 시를 외우게’ 했다는 말이 나오는데 고대에는 장님이 대게 시인이나 음악가였다. <일리아드>, <오디세이>의 저자로 알려진 호메로스도 장님이었고, 그는 글자 대신 구술로서 자신의 작품을 전파시켰다.

요컨대 불교, 힌두교, 유대교의 수많은 인류의 경전과 지혜는 대부분 낭송과 구술의 형식으로 세대를 이어서 전파되었다.
<논어>는 공자 사후에 제자의 제자들이 만들어낸 책이고 공자는 자신이 추려서 묶은 <시경>을 공자학당의 가장 중요한 교재로 사용했다. 여기서 공자는 ‘시 낭송’의 효용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시를 낭송하면 자신이 뜻하는 바나 감정이 고양될 뿐 아니라 사물을 보는 눈이 키워지고 남들과 탈 없이 지낼 수도 있으며 원망스러운 일이 있을 때도 분노에 휘둘리지 않고 대처할 수 있게 된다. 가까이로는 부모를 섬기고 멀리는 군주를 섬길 때도 도움이 된다. 또한 짐승들이나 초목의 이름을 많이 알 수도 있다.”-<논어> 제17편 양화

이렇듯 옛날의 독서는 눈으로 읽지 않고 소리로 읽는 독서였다. 원래 ‘독서(讀書)’란 큰 소리로 책을 읽는 것을 뜻한다. 독(讀)자에 말씀 언(言)이 들어 있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그래서 근대화가 이루어지기 이전에는 양의 동서를 막론하고 구술과 낭독문화의 시대였다.

나는 얼마 전 어느 인문학 모임에 나가서 고전을 낭독하는 체험을 해보았는데 왜 독서가 ‘큰 소리로 책을 읽는 것’인지를 체험으로 알게 되었다. 고전을 소리 내어 읽는 순간 몸 전체가 그 소리의 파동 속에서 전율하고 있음을 느꼈다. 그것은 내용을 이해하고 못하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때 나는 문화적 충격을 느끼며 “옛글을 소리 내서 자꾸 읽으면 옛 사람의 기운이 그 소리를 타고 내 속으로 들어온다.”는 말이 사실임을 깨달았다. 나는 ‘소리를 따라 기운을 얻어야 터지는 문리’를 터득한 것이었다. 옛 사람은 <논어>나 <맹자>를 백 번 소리 내서 읽으면 문리가 탁 소리를 내며 터진다고 하지 않았던가! 나는 <논어> 백 번 읽기에 도전하면서 짜릿한 희열을 느꼈다.
놀라운 것은 무식하게 무조건 외우는 공부의 효과다. 한문학자 정민 교수는 이렇게 그 효과를 말하고 있다.

무조건 외우기만 능사로 알았던 예전 학생들은 어느 순간부터 생각에 놀라운 가속도가 붙기 시작한다. 뜻도 모르고 외운 한 구절이 오늘 배운 새 구절과 연관되고, 이 책의 내용이 저 책의 내용과 연결되면서, 지식은 상승작용을 일으키고 저희들끼리 네트워크를 구축한다. 전혀 다른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어느 순간 같은 이야기인 줄을 깨닫는다. 일단 이 단계에 진입하면 그 다음부터는 차원이 달라진다. 예전에는 무슨 소리인지 모르던 말이 또렷하게 가슴에 새겨진다. 따로 놀던 생각이 한 초점을 향해 달려간다. 하나 들어 하나 알기도 바쁘던 녀석이 하나만 들어도 열을 알게 된다. 이른바 문리(文理)가 난 것이다. 선인들이 20대 30대에 쓴 글을 보면 그만 어안이 벙벙해진다. 어떻게 저 나이에 저렇게 깊은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싶다. 그들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40대 대학 교수가 그 생각의 결을 잡지 못해 허둥지둥 쩔쩔맨다. 옛글을 읽다 보면 세상이 과연 진보하기는 하는 건가 싶을 때가 정말이지 한 두 번이 아니다. -정민 <독서와 문장론>

낭독문화는 서양에서도 중세에까지 이어졌다. 로제 샤르티에의 <읽는다는 것의 역사>를 보면 ‘텍스트는 씌어진 것의 음성적 실현에 지나지 않는다’는 정곡을 찌르는 대목이 나온다.

"텍스트는 정지된 물체에 대한 명칭이 아니라 씌어진 것과 음성, 그리고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과의 동적 관계를 가리키는 명칭이 된다. 따라서 텍스트는 씌어진 것의 음성적 실현에 지나지 않으며, 낭독자의 응성 없이 씌어진 것만으로는 표현도 분배도 할 수 없게 된다."

우리가 눈으로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은 인쇄술이 발달하고 산업화가 이루어진 이후의 일이었다. 책이 쏟아져 나오고 정보의 량이 많아지면서 눈으로만 훑어 읽기에도 바빠진 탓이다. 그러나 진정한 독서는 옛사람들의 낭송독서, 암송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눈으로 읽고, 손으로 쓰고, 입으로 소리 내어 읽기의 ‘삼위일체 독서법’이 시대적 요청이 아닐까?
* * *
인간은 처음 소리를 통해 세상을 만난다. 태아는 4~5개월이 지나면 소리와 음악의 자극에 반응한다. 태아의 눈도 만들어지고 있으나 캄캄한 자궁 속에서 세상과 첫 교신을 하는 것은 귀다. 태아는 귀를 통해 엄마의 심장박동 소리를 듣고, 엄마의 이야기를 듣고, 바깥세상의 소리마저 듣는다. 태아에게 세상은 소리와 진동이다. 인간은 그렇게 해서 태어난 탓에 소리와 진동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그 반응은 쉽계 내면화 되고 의식화 된다. 아이 때는 물론 성인이 되어서도 그렇다. 예컨대 판소리 가락을 들을 때 텍스트를 눈으로 읽는 것보다 소리로 들을 때가 훨씬 전달율이 크다는 거은 두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소리와 진동을 타면 귀에 쏙쏙 들어온다. 말이란 맥락으로 전달되는 것이지 개별적 단어와 숙어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 하나, 귀가 열리면 혀도 굴러간다.(…) 잘 듣는 이들이 말도 잘한다. 이야기꾼들이란 귀가 뚫린 이들이기도 하다. 온갖 인정물태를 주워 담을 수 있는 능력, 그게 가능하면 그 내용들을 자기 식으로 버무리는 혀도 가능하다.-고미숙, <호모 큐라스>

고전평론가 고미숙에 따르면, 암송은 소리로써 텍스트를 몸 안에 새기는 행위다. 그는 이를 뼈에 새기는 행위라 했다.

소리를 기억하는 건 뼈라고 했다. 그렇다. 뼈에 새기려면 외워야 한다. 다 왼 다음엔 텍스트를 버려도 된다. 즉, 텍스트를 기반으로 하되 궁극적으로 텍스트를 떠나는 것이다. 혹은 '떠나기 위해 텍스트를 죽도록 사랑 하는 것'이라고 표현해도 좋다. 떠날 수 있으면, 다시 말해 텍스트 없이도 내 안에서 소리가 흘러나올 수 있으면, 이제 몸이 자유로워진다. -고미숙, <호모 큐라스>

인류의 모든 경전은 다 낭송과 암송을 통해 전승되었다. 실재로 불교의 모든 경전들은 20세기 초까지 2,500년 이상 승려들의 암송으로 대를 이어 전승되어오다가 일본인들에 의해 텍스트를 되찾았다. 아마도 그 오랜 세월동안 불교의 승려들은 평생 계속된 암송훈련으로 경전이라는 텍스트를 뼈에 새겼으리라.

이 말은 과장된 수사가 아니라 현대의학에서 검증된 바 있는 과학적 사실이다. '귀의 아인슈타인'이라고 불리는 과학자 알프레드 토마티는 소리와 뼈의 긴밀한 상관관계를 이렇게 밝히고 있다.

"발성된 소리는 입에 있지 않고, 몸에 있지도 않으며, 정확히 뼛속에 있다 노래하는 것은 실제로는 신체의 모든 뼈다. (…) 목소리는 우리 몸의 뼈 전달방식을 흥분시키는데, 이때 소리가 몸의 밖에서, 몸을 초월한 곳에서 나는 것과 같은 인상을 준다"

토마티는 고대인들은 소리를 가지고 뼈를 공명시키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고 말한다.

"고대인들은 일단 완벽한 청음 자세에 도달하게 되면, 몸은 밖으로 열려지고, 문자 그대로 안과 밖에서 나는 모든 소리가 하나가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것은 수직 자세를 말하며, 이것 없이 뇌가 완전히 깨어 있는 의식 상태에 이르도록 자극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동의보감>을 보면 목소리를 들으면 그 사람의 몸 상태를 알수 있단다. <동의보감>의 「성음(聲音)」 장에 따르면 목소리는 신장에 그 뿌리가 있다.

"심心은 성음의 주인이고, 폐는 성음의 문이며, 신腎은 성음의 뿌리"이다. 신장과 폐, 심장 등 주요 장기가 화음을 이루어야 소리가 나온다는 사실. 따라서 목소리는 의학적으로도 아주 중요한 진단 기준이 된다. 예컨대, “간병에는 목소리가 슬프고, 폐병에는 목소리가 급하다. 심병에는 목소리가 굳세고, 비병에는 목소리가 느리며, 신병에는 목소리가 가라앉는다. 대장병에는 목소리가 길고, 소장병에는 목소리가 짧다. 위병에는 목소리가 빠르고, 담병에는 목소리가 맑으며, 방광병에는 목소리가 약하다. -허준, <동의보감>, 윤석회·김형준 옮김,

고미숙에 따르면 "신장은 정精:(진액이 고도로 농축된 에센스)의 원천인데, 이 정이 응축 변형되어 뼈가 되고 골수가 된다. 그래서 목소리는 곧 뼈의 상태이기도 하다. 뼈가 흐물흐물한데, 소리가 영롱하기는 불가능하다."
토마티는 말한다. "인간의 몸은 언어의 도구이다. 그리고 인간의 언어는 인간의 몸을 공명시키는 노래이다."
한 마디로 우리의 몸은 악기의 현이 떨리듯이 ‘온몸의 세포와 뼈들을 진동시키고 영혼에 공명’을 일으키는 공명통이다.
이미 말했듯이 그 옛날 서당에서는 학동들에게 무조건 소리내어 글을 읽고 외우게 교육시켰다. 의미를 잘 몰라도 상관없다. 어린 학동들은 의미를 알지 못했다고 해도 하루에도 수 십 번씩 자꾸 읽다보니 문장을 그대로 외워버렸다. 율곡은 3살부터 글을 읽었다고 하는 데 아무리 머리가 좋아도 3살짜리 꼬맹이가 무슨 뜻을 알고 읽었겠는가. 신사임당도 율곡을 비롯한 자녀들에게 무조건 소리내어 읽는 글공부를 시켰을 것이다. 어머니가 글을 읽으면 자녀들은 따라 읽는다. 어머니는 좌우로 몸을 흔들며 읽고 아이들은 앞뒤로 흔들며 글을 읽는다.

같은 책을 계속 되풀이해서 읽는 것은 어찌 보면 굉장히 비효율적인 독서다. 하도 읽어서 한지로 된 책에 보풀이 일었다. 책을 묶은 실이 다 끊어져 너덜너덜 해졌다. 입에 닳고 닳아서 어느 구절을 들이대도 자동적으로 그 다음 구절이 술술 입에서 흘러 나왔다. 정작 뜻을 모르면서도 다 외웠다. -정민 <독서와 문장론>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도 그렇게 사서삼경을 전부 다 외웠다. 모든 문장을 처음부터 끝까지 외워야만 과거시험에도 합격할 수 있었다.
나는 <논어>를 무조건 소리 내어 읽어나가면서 텍스트가 귀에 감기는 체험을 했다. 그렇게 읽다 보니 그 가락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뇌리에 스며들어, 뜻을 모르고도 글을 외울 수 있었다. 그랬다. 의미는 소리에 뒤따라 왔다.
독서 이론과 방법론에 관한 글을 많이 남긴 중국의 저명한 학자 주자청(朱自淸, 1898~1948)은 소리 내어 읽는 공부를 강조했는데 오늘날 공부법에 비춰보면 시사하는 점이 크다.

주자청은 통독하는 방식으로 독서라는 말뜻 그대로 '읽는' 공부를 강조했다. 그래서 청나라 사람 요내(姚鼐)의 "소리 지르듯 큰 소리로 읽다 보면 저절로 깨닫게 된다"는 말을 존중했다. 또 증국번(曾國藩)의 "큰 소리로 읽지 않으면 큰 뜻을 얻을 수 없고, 속으로 음미하듯 읊조리지 않으면 그 심오한 의미를 찾아낼 수 없다"는 관점 역시 중시했다.(논낭독(論朗讀))-김영수 <현자들의 평생공부법>

낭독 훈련을 하다보면 자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처음에는 자신의 목소리가 낯설고 타인의 목소리보다 멀게 느껴지지만 이내 익숙해진다.
나는 <논어>를 수십 번 소리 내어 읽으면서 내 목소리가, 그리고 공자의 말이 내 몸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느꼈다. 어느 날 내가 내 목소리의 파동과 에너지가 뼈에 새겨지는 느낌을 받았다면 심한 과장일까?
소리 내어 글을 읽다보면 목소리가 왜 중요한지 알게 된다. 스스로 탁한 목소리보다는 맑고 낭랑한 목소리가 존재의 깊은 울림을 울려 준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자꾸 목소리를 가다듬고 발성 연습을 하게 된다.
독서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현대인에게 목소리는 매우 중요하다. 좋은 인상을 주는 사람은 잘 생긴 외모보다 호소력 있는 목소리의 소유자일 때가 많다.

따지고 보면 스타가 되는 조건도, 외모가 아니라 목소리에 달려 있다.

송강호, 한석규, 최민식, 류승룡, 하정우 등등. 우리 시대 최고의 배우들은 하나같이 목소리의 달인들이다. 상대적으로 외모가 중시되는 여배우들도 목소리 톤이 안 나오면 배우로서의 생명력은 미약해진다. 영화나 드라마의 캐스팅이 완료되면 가장 먼저 하는 작업이 '리딩' 인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보통 사람들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마음을 전달하는 데는 목소리만 한 게 없다. 그만큼 말과 소리의 잠재력은 상상 이상으로 크다. 그러니 어찌 매일매일 갈고닦지 않을 수 있으랴. -고미숙, <호모 큐라스>

중국 북송시대의 시인 소동파(蘇東坡)도 목소리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다. 어느 날 곽(郭)이라는 이름없는 시인이 와서 자작한 시를 낭송하며 비평을 구했다. 낭송을 듣고 난 소동파가 말했다.

"점수로 따지면 백 점을 주어도 무난하군!"
예상 외의 호평을 들은 곽 시인은 벌쩍 뛰고 좋아하면서 어떤 점이 좋은가 상세한 평을 요청했다. 그러자 소동파는 말했다.
"우선 자네 음성이 70점은 되고 나머지는 시의 점수라 보아야 할 것 같은데."
시로서는 30점 밖에 받지 못했으니 시로서 불합격이란 소이였다. 뛸 듯이 기뻐하던 곽 시인은 그만 실망하고 말았다. 하지만 시낭송에서도 목소리는 별 볼일 없는 시도 살려주는 엄청난 효과를 발휘하기도 한다.

당신도 아무 고전이나 펼쳐들고 한 번 소리 내어 읽어보시라. 목소리를 가다듬고 낭랑하게 읽게 되면 자신의 목소리가 몸에 감기어 들고 무엇인가를 진동 시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존재의 깊숙한 데서 울리는 자신의 목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으면서 뼈에 새기는 공부의 세계로 진입하시고 그 체험을 당신의 자녀들에게도 나누어 주시라. 신사임당도 그의 자녀들에게 그런 낭송 독서를 가르쳤던 것이다.

가금현 기자 ggh7000@hanmail.net
가금현 기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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