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몸가짐을 바로하고 나쁜 습관을 고쳐라

리채윤의 실천하라, 정주영처럼
[17]몸가짐을 바로하고 나쁜 습관을 고쳐라
- 리채윤 도서출판 작가교실 대표
  • 입력 : 2022. 08.29(월) 10:42
  • 가금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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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채윤 도서출판 작가교실 대표
[리채윤의 신사임당의 자녀교육법/CTN] 우리의 몸은 정원이고 마음은 정원사다. 게을러서 불모지가 되든 부지런의 거름을 주어 가꾸든 그것에 대한 권한은 모두 우리 마음에 달려 있다. -셰익스피어

■엄격한 어머니 신사임당

아이들은 말을 배우기 시작하면 사물의 이치를 터득하기 시작한다. 신사임당의 우선순위의 앞자리에는 아이들의 ‘공부’가 있었다. 그녀는 회초리를 들지 않고도 엄한 훈도로서 꾸짖는 것과 감싸 안는 것을 함께 해 나갔다.

우리 선비들의 생활의 기본은 수신(修身)에 있었다. '천자부터 평민에 이르기까지 일괄하여 모두가 수신을 근본으로' 삼았던 시절이었다. 몸과 마음을 정성스럽게 하고 바르게 하지 않으면 모든 일을 제대로 성취할 수 없었다.

여중군자의 삶을 지향했던 신사임당은 처녀시절부터 새벽에 일어나서 글을 읽고 마음을 닦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신사임당은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거창한 말보다는 먼저 마음의 수양이 모든 것의 근본이라고 생각했다.

율곡이 기록한 〈어머니행장〉에 따르면 신사임당은 '천성이 온화하고 얌전하였으며 지조가 정결하고 거동이 조용하였으며 일을 처리하는 데 편안하고 자상스러웠으며, 말이 적고 행실을 삼가고 또 겸손하였다'고 한다.

신사임당은 자녀들을 교육시킴에 있어서도 마음을 닦는 것으로 공부의 목적을 삼았다. 마음을 닦기 위한 첫 단계는 글 읽기다. 그녀는 자녀들에게 글 읽기를 강요하기보다는 자신이 먼저 일어나서 글 읽는 자세를 보여 줌으로서 아이들이 따라하게 하는 방법을 주로 애용했다.

흔히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들은 항상 "아직 어려서 알지 못할 것이니 좀더 성장하기를 기다렸다가 가르치면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쓸모없는 생각이다. 안씨가훈(顔氏家訓)에 “색시는 처음 왔을 때 가르치고, 아이는 어릴 때 가르친다."라는 말이 있다.

중국 역대 왕조와 명문대가에 대를 이어 전해진 최고 훈육서 <안씨가훈>을 쓴 안지추(顔之推)는 사람은 어릴 때에는 오로지 정신을 가다듬어 예리하지만, 나이가 들면 생각이 흩어지고 둔해진다면서 일찍부터 가르쳐 배움의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아이들은 말을 배우기 시작하면 사물의 이치를 터득하기 시작한다. 말과 글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배움을 아이들은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조기교육에 신들린 요즘 어머니들처럼 우리말도 못하는 세 살배기 아이에게 영어를 가르치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신사임당은 격물치지(格物致知)의 가르침대로 아이들을 교육시켰다. 격물치지란 사서(四書)의 하나인 ‘대학(大學)’의 첫머리에 나오는 말로 '대학'의 원문은 이렇다.

"지식에 이르는 것은 사물을 궁구하는 데 있다. 사물의 이치가 이루어진 이후에야 지식이 이르게 되고, 지식에 이르게 된 뒤에야 마음이 바르게 된다. 마음이 바르게 된 뒤에야 몸이 닦인다. 몸이 닦인 뒤에야 집안이 가지런해진다. 집안이 가지런해진 뒤에야 나라가 다스려진다. 나라가 다스려진 뒤에야 천하가 고르게 된다(致知在格物, 物格而后知至, 知至而后意誠, 意誠而后心正, 心正而后身修, 身修而后家齊, 家齊而后國治, 國治而后平天下).<김원중 역>"

주자(朱子)의 격물치지에 대한 설명을 보면 다음과 같다.

"세상 만물은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그 이치를 지니고 있다. 이 이치를 하나씩 하나씩 추구해 들어가면 마침내 확연하게 세상 만물의 표리와 정표 조잡한 것들을 밝혀 낼 수가 있다. 다시 말하면 격물의 「격(格)」은 도달한다는 것이니 격물은 즉, 사물에 도달한다는 말이다. 만물이 지닌 이치를 추구하는 궁리(窮理)와도 같은 뜻이라 하겠으며 세상 사물에 이르고 이치의 추궁으로부터 지식을 쌓아올려서 지(知)를 치(致)한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정리하면 격물치지란 ‘사물의 이치를 연구하여 후천적인 지식을 명확히 하는 것’이다. 신사임당의 우선순위의 앞자리에는 아이들의 ‘공부’가 있었다. 그녀에게 있어서 아이들의 교육은 나무의 싹을 기르는 것과 같은 일이었다. 율곡은 <격몽요결> 지신장(持身章)에서 공부하는 학동이 갖추어야 할 자세를 이렇게 일러주고 있다.

언제나 아침 일찍 일어나고 밤에는 자야한다. 옷과 모자를 반드시 단정히 하고, 얼굴빛은 반드시 엄숙해야한다. 손을 모으고 무릎을 꿇고 앉으며, 걸음걸이는 안정되고 거칠지 않아야 한다. 말을 신중히 하여야 한다. 그리하여 한 번 움직이거나 한 번 쉬는 때라도 경솔하거나 소홀히 해서 행동해서는 안 된다.(常須夙興夜寐, 衣冠必正, 容色必肅, 拱手危坐, 行步安詳, 言 語愼重, 一動一靜, 不可輕忽苟且放過。)

신사임당은 아이들에게 사물을 알기 위해서는 그 대상에 사랑을 쏟아야 한다고 가르쳤다. 또한 사물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그 대상을 이해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래야 격물치지가 이루어지고 나아가서 수신을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신사임당은 회초리를 들지는 않았지만 매사에 엄격했다. '안씨가훈'을 보면 “집 안에서 회초리를 드는 것과 화를 내 꾸짖는 일이 사라지면 자녀의 잘못된 행실이 즉각 나타난다. 형벌(刑罰)이 제대로 집행되지 않으면 백성들은 수족(手足)을 둘 곳이 없다.

집안을 다스리는 데 있어서 관대하고 엄격한 것은 나라를 다스리는 것과 마찬가지이다.”라는 말이 나오는 데 신사임당은 회초리를 들지 않고도 엄한 훈도로서 아이들의 교육에 임했다. 당근과 채찍처럼 그녀는 꾸짖는 것과 감싸 안는 것을 함께 해 나갔다.

남편 이원수는 한양과 강릉을 한량처럼 떠돌며 살았기에 아이들의 교육은 전적으로 신사임당의 몫이었다. 다행이 셋째아들 율곡은 3세 때부터 책을 줄줄 읽었던 신동이었고 다른 아이들도 어머니의 가르침을 잘 따라서 교육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어머니 이씨 부인의 도움은 더할 나위 없는 큰 힘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신사임당은 강릉에서의 생활을 무척 사랑했다. 그녀는 19세에 결혼을 하고 38세에 한양 시댁으로 들어가기까지 20년간을 친정살이를 하며 살았고 그곳에서 자녀들을 키웠다. 사람이 사는 장소도 인간을 만드는 가장 큰 요소 중 하나다. 독일의 철학자 알렉산더 바움가르텐은 이렇게 말한다.

"인간은 같은 장소에 있는 것만으로도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특정 정서나 관념, 편견 등을 경험한다. 이 가역적인 영향의 본질에 관해서는 아직 확실하게 밝혀진 것이 없다. 그러나 우리들은 어떤 사람은 그저 그 자리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반감과 적의를 갖게 하고, 어떤 사람은 그것에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고 밝고 즐거운 분위기를 조성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38세 되던 해 신사임당은 노쇠한 시어머니를 대신해서 시댁살림을 하기 위해 가족을 이끌고 한양으로 이사를 했다. 사람의 성격은 상대방, 장소, 상황 등 여러 가지 조건에 의해 느낌과 평가가 달라진다.
한양으로 이사를 한 후부터 신사임당은 많은 심경의 변화를 겪는다. 가장 큰 문제는 평생을 같이했던 어머니와 떨어져 살게 되었다는 외로움이었다.

율곡의 기록을 보면 고향을 그리워하며 밤중에 조용해지면 울기도 하고 새벽이 되도록 잠을 이루지 못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서울 시집은 지금의 종로구 수정동과 청진동 언저리인 수진방이란 곳에 있었다. 시집은 그동안 듣고 생각한 것 보다는 집도 크고 마당도 넓은 편이었고, 방도 많아서 살만한 집이었다. 시어머니 홍씨 부인도 노쇠하긴 했으나 신사임당을 딸처럼 여기고 재주 많은 며느리를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그러나 신사임당은 몸이 여위어만 갔다. 거기에다 그녀는 한양에 와서 막내 아들 우를 낳았다. 허약한 몸에 아기에게 젖을 빨리고 살림살이도 보살펴야 했기에 무척이나 고단한 생활이었다.

무엇보다도 강릉에 홀로 계신 어머니 생각 때문에 눈물을 흘릴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특출한 예술가이고 아이들의 교육에 뛰어났던 어머니였지만 그녀도 한 어머니의 딸이자 외로움을 탈 줄 아는 일개 여자였던 것이다.
가금현 기자 ggh7000@hanmail.net
가금현 기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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