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회]100여명의 가족을 거느린 율곡

리채윤의 실천하라, 정주영처럼
[24회]100여명의 가족을 거느린 율곡
- 이채윤 도서출판 작가교실 대표
  • 입력 : 2023. 07.13(목) 10:13
  • 가금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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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채윤 도서출판 작가교실 대표
[리채윤의 신사임당의 자녀교육법/CTN] 신약성서 마태복음 10장 36절에는 "집안 식구가 바로 자기 원수다"라는 말이 나온다. 그 종교적 의미야 잘 알 수 없지만 살다보면 집안 식구가 원수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율곡 형제들에게 서모(庶母) 권씨는 그런 존재였을 것이다, 권씨는 주막집 주모라는 설도 있고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신사임당 같은 어머니를 두었던 자식들로서는 견딜 수 없는 존재였으리라.

신사임당은 세상을 떠나기 전에 권씨의 존재를 알고 있었던 듯한데 그것이 그녀의 병을 부추기는 역할을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여러 기록에서 권씨가 술을 즐겨했다는 것으로 미루어보면 이원수는 정말 대책이 없는 한량이었던 모양이다.

장남이 선과 권씨는 나이가 비슷한 또래였던 모양이다, 젊은 여자를 어머니로 대우해야 하는 장남과 대접을 받으려고 하는 권씨가 갈등을 겪은 불을 보듯 당연한 일.
조선후기의 학자 박세채(朴世采, 1631-1695)는 율곡과 서모 권씨의 관계를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선생의 서모가 패악함이 심해 조금이라도 뜻대로 되지 않으면 목매어서 죽으려고 하여 사람들이 달려가 구하여 그치도록 하였고, 또한 서모와 맏형의 관계가 특히 좋지 않아 선생이 두 사람의 관계를 말리고 사리事理로 간하기를 힘껏 하였으나 끝내 되지 않자 마침내 아버지에게 그 일을 울며 아뢰었고, 어느 날에는 책을 넣어두는 상자를 닫고 길을 떠났다.

그 속에는 부형父兄과 서모 앞으로 된 세 통의 편지가 들어 있었다. 그 편지의 끝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 있었다. ‘끝내 화합하지 못한다면 차라리 죽어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 낫습니다.’
-박세채, 『남게집南溪集』

그러나 육곡은 서모 권씨도 지극정성으로 모셨다. 율곡은 서모에게 봉양은 끝까지 한 것으로 보인다.

율곡은 어릴 때 어머니 신사임당이 들려준 장공예의 구세동거 이야기를 마음에 새기고 형제들이 함께 모여 살기를 희망했었는데 42세가 되던 1577년(선조 10년) 1월에 율곡은 해주 석담에서 서모 와 큰형수 곽씨, 부인, 측실, 그리고 형제와 아들, 조카, 비복 등 100명에 가까운 종족(宗族)을 모아 놓고 살았다.

그는 이들이 일가로서 화목하게 지내기 위해 「동거계사(同居戒辭)」라는 생활 규칙을 만들었다. 여기 서 큰형수를 친어머니처럼 받들고, 측실, 비복들도 모두 사당에 참배토록 하여 주변의 학자들이 의문을 품기도 했으나, 율곡은 이것은 내 뜻이니 다른 사람들이 반드시 본받을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율곡은 형제들이 함께 사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동생同生 즉, 형제가 부모의 몸으로써 나누어 낳았으니 한 몸이나 다르지 아니하니 서로 사랑하여 조금도 내 것, 남의 것 하는 마음 없으며 진실로 사랑하여 살지어다. 그러므로 옛사람이 구족(九族)이 동거하였는데 하물며 우리는 부모님 일찍 여의었고 맏형님도 일찍 돌아가셨으니 우리 살아 있는 이가 서로 사랑하여 한 세간에 살며 서로 떠나지 말지어다. 서로 떠나서 살게 되면 인생 이 사는 보람이 아니므로 동거의 계획을 하나니, 비록 고향을 떠나 이리로 왔어도 일가가 화동和同하여 즐거이 지내면 우연한 일이겠는가"
- <동거게사〉 머리말

<동거계사>는 원래 한글로 썼으나 뒷날 송시열이 한문으로 번역하여 『율곡전서』에 실려 있다. 아마 여성과 비복들까지 모두 읽을 수 있도록 한글로 쓴 것으로 보인다. 「동거계사」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1 형제는 부모와 한 몸에서 갈라진 것이다. 따라서 형제는 한 몸이나 다르지 않다. 마땅히 서로 친애하고, 조금이라도 서로 너와 나를 가르는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된다. 옛사람 가운데에는 9족(族) 이 함께 동거한 일도 있다. 하물며 우리는 일찍이 부모를 여의였으며, 큰형님이 또한 일찍 세상을 떠나셨다. 이제 살아남은 우리들은 서로 우애하는 데 힘쓰고, 재산을 함께 가지면서 살아야 하며 서로 분리하지 않아야 한다. 만약 서로 분리하게 되면 조금 생존의 즐거움이 없어질 것이다. 그래서 이 동거의 계책을 만든 것이다. 비록 떨어져 있어 향토가 다르지만 와서 일가가 되어 모여 살면서 화락(和樂)한 세월을 보내고 있으니 이것이 어찌 우연한 일이겠는가?
이에 마음을 다스리고 행동을 닦는 방법을 대략 적어서 때달 초하루마다 서로 모여 읽으며 모두 다 듣고 알도록 할 것이다.

2 효(孝)는 백행(百行)의 근원이다. 부모가 이미 돌아가셔서 효도를 할 곳이 없어졌고 오직 제사 한 가지만 남아 있을 뿐이다. 그래 서 무엇이든 얻는 것이 있으면 반드시 간직했다가 제수품으로 쓸 것이며, 다른 용도로 써서는 안 된다. 그리고 제사를 지낼 때에는 반드시 마음을 정성스럽게 하고 몸을 깨끗이 하여 선령(先靈)께서 즐겁게 음식을 드시도록 해야 할 것이다.

3 젊은이들이 부모를 섬길 때는 반드시 옛 성인의 가르침을 마음에 새겨 효도를 해야 할 것이다.

4 나의 형수님은 일가의 어른이자 제사의 주인이므로 그 아랫사람들은 특별히 공경하게 모시고 어머니처럼 대접하는 것이 옳다.

5 좋아하고 싫어하는 마음이 너무 한쪽으로 기울면 안 된다. 항 상 온화한 얼굴과 따뜻한 말로 만나고, 가르치고 책할 때에도 성난 모습을 밖으로 보이지 말 것이며, 헐뜯는 말을 하지 말 것이며, 참언(讒言)을 믿지 말 것이며, 혹시 이간하는 말이 있으면 노복은 태(笞)를 가지고 훈계하고, 첩은 엄하게 꾸짖어야 한다. 그래도 뉘우치지 않으면 내보낸다.

6. 동거자들은 사적인 재산을 가지면 안 되며, 부득이 사용(私用)할 것이 있으면 집의 주인이 나누어 준다. 자기 집에 많은 것을 가지려는 마음을 가지면 안 되고, 쓰는 데 적당한 정도에만 그쳐야 한다. 요컨대 길고 멀리 내다보는 생각이 필요하다.

7. 처와 첩 사이에서 첩은 공순(恭順)함을 다해야 하고, 처는 자애로워 틈을 만들지 않아야 한다. 각기 성심(誠心)으로 가장(家長)의‘ 마음을 어기지 않는다면 어찌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8. 집안의 여러 사람들이 앉아서 일을 할 때에는 장자(張子)가 지나가면 반드시 일어나고, 대범 조심해야 하며, 항상 공순한 태도를 지녀야 한다.
9. 일가 안에서 숙부에게는 마치 부모를 섬기는 것처럼 해야 하며, 종형제는 친형제의 예(禮)로써 서로 한 몸처럼 친애해야 하며, 서로 만날 때에는 몸은 반드시 공순하고 말은 반드시 온화하고, 안색은 반드시 평온해야 한다.

10. 비복이 비록 착하지 못한 일을 하더라도 큰 소리로 꾸짖지 말고 반드시 따뜻한 말로 가르치고 훈계해야 하며, 그래도 듣지 않으 면 가장에게 알려서 책벌(責罰)하도록 해야 한다. 소자(少솝; 어린아이)는 비록 사사로이 부리는 노복이라도 가벼이 매질해서는 안 되며, 반드시 가장에게 알려야 한다.

11. 무릇 일가 사람들이 서로 감싸고 화목하는 데 힘쓰고, 그 마음을 화평하게 가지면 가내에 길하고 좋은 일이 반드시 모이게 되며, 만약 서로 삐딱하여 틈이 생기면 흉하고 더러운 기(氣)가 생기는 법이니 어찌 두렵지 않은가? 우리는 서로 모여들어 아버지는 자식을 사랑하고 자식은 부모에게 효친하며, 남편은 처를 바르게 하고 처는 남편을 공경하며, 형은 동생을 사랑하고 동생은 형에게 공순하며, 처는 첩을 자애롭게 대하고 첩은 처에게 공순하며, 소자(小子)는 성심으로 장자(張子)를 섬기고 장자는 성심으로 소자를 사랑 하여 비록 미치지 못하는 일이 있더라도 반드시 조용히 가르치고 타이르며 성을 내서는 안 된다. 착한 일을 하거든 서로 다투어 본받고, 편안치 못한 일이 있으면 서로 참아야 한다. 가주(家主)는 비복을 자애롭게 대하고, 비복은 가주를 경애(敬愛)하며, 절대로 불평 한 말이나 불평한 낯을 보여서는 안 된다. 일가 안에 언제나 온화하고 따뜻한 기운이 있으면 어찌 즐거운 일이 아니겠는가? 모름지기 각자 이런 뜻을 알고 스스로 힘써야 할 것이다.

「동거계사」에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서모가 있음에도 큰형수를 집안의 최고 어른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것과 처와 첩은 자애와 공순으로 서로 화목할 것을 말하고 있으며, 비복에게도 따뜻한 배려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비복에게 자애롭게 대하고, 큰 소리로 꾸짖지 말고, 함부로 매질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강조되고 있으며, 비복도 함께 사당에 참배하도록 허용하고 있다.
서모 권씨는 변덕스럽고 성깔이 사나워서 평소에도 율곡 형제들에게 많은 시달림을 주었고, 홀로 된 후부터는 심사가 괴로워서인지 새벽에 꼭 해장술을 즐겼다. 율곡은 그러 서모에게도 아침 문안을 드린 후에 손수 술 주전자를 데워 두어 잔 부어 드리고 물러나왔다고 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도 남 대하듯 하지 않고 부모에 대한 도리로 지성껏 모시자 서모도 마음을 바꾸어 온순한 태도를 가지게 되었고, 후에 율곡이 먼저 죽자 정성껏 보살펴준 고마움에 보답할 길이 없다 하여 소복으로 3년을 지냈다고 한다.
가금현 기자 ggh7000@hanmail.net
가금현 기자 입니다.
긍정적인 사고로 의리를 지키며 살고싶다.
술은 웃음소리가 밖에까지 들리도록 마셔라!
내가 그자리에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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