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격몽요결>에 나타난 어머니 신사임당의 교육관

리채윤의 실천하라, 정주영처럼
[18]<격몽요결>에 나타난 어머니 신사임당의 교육관
- 리채운 도서출판작가교실 대표
  • 입력 : 2022. 10.05(수) 10:02
  • 가금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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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채운 도서출판작가교실 대표
[리채운의 신사임당의 자녀교육법/CTN] 1577년(선조 10년)에 율곡은 후학들에게 학문의 길을 열어주기 위해서 <격몽요결>을 펴냈다. 그의 나이 42세 때였다. 당시 그는 벼슬자리에서 물러나 해주 석담에 있는 은병정사(隱屛精舍)에서 후학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그런데 제자들이 공부의 방향을 잡지 못하는 것을 보고 안타까운 마음에서 <격몽요결>을 지었다. 그런 만큼 이 책은 학문을 하는 기본방향을 제시하는 책이라 하겠다. 율곡은 서문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내가 바닷가 기슭에 거처를 정하니 한두 사람이 나를 찾아와 이것저것 묻고 배우기를 청했다. 그러나 나는 그들의 스승이 될 능력이 없음을 부끄럽게 여겼다. 또 처음 배우는 사람들이 무엇을 어디서부터 배워야 할지 그 방향을 알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웠다. 또 배워야 하겠다는 굳은 의자가 없이 흐르는 대로 나아가는 것이 도리어 남의 조롱만 살까 두려웠다. 하여 간략하게 한 권의 책을 써서 마음을 세우고, 몸가짐을 바로하고, 어버이를 받들고, 세상 사물을 상대하는 방법의 대강을 서술하고 이름을 <격몽요결>이라 붙였다.

말하자면 <격몽요결>은 초심자를 위한 교육메뉴얼인 셈이었다. 앞에서도 밝혔지만 훗날 이 책은 조선시대 후기를 대표하는 교육지침서로서 전 국민이 애독하는 책이 되었다.
그런데 이 책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어머니 신사임당의 가르침이 그대로 묻어나고 있다. 신사임당처럼 '뜻을 세울 것'을 권하면서 시작된 <격몽요결>의 서문을 보자.

사람이 이 세상에 나서 공부를 하지 않고서는 사람다운 사람이 될 수 없다. 학문이라는 것은 이상하거나 별다른 것이 아니다. 어버이가 되어서는 마땅히 자식을 사랑하고, 자식이 되어서는 마땅히 어버이를 사랑하고, 신하가 되어서는 마땅히 충성스러워야 하고, 부부가 되어서는 마땅히 서로 존중해야 하고, 형제가 된 자들은 마땅히 서로 우애를 나누어야 하고, 젊은이는 마땅히 어른을 공경해야 하고, 친구 사이에는 마땅히 믿음이 있어야 한다.
공부를 한다는 것은 날마다 살아가는 일상의 행동에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다. 아득하고 현묘한 것에 마음을 두어 필요이상의 것을 바라서는 안 된다. 학문을 멀리하고 공부를 하지 않는 사람은 마음이 막히고 식견이 어두운 까닭에, 모름지기 글을 읽고 그 이치를 끝까지 깨친 후에야 어떤 경지에 들어설 수 있는 것이다.
-율곡 이이 「격몽요결-서(擊蒙要訣-序)」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격조 높은 명문장인데 어머니 신사임당의 가르침을 그대로 반영한 문장이기도 하다. 그만큼 대학자 율곡이 태어나느데는 어머니 신사임당의 역할이 지대했다.
<격몽요결>은 대단히 간략하면서도 교육의 요체를 함축적으로 담아내서 학동들이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짜임새로 구성되어 있다. 공자는 공부는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부지런히 배우는 것이라 했다. 율곡 또한 그 가르침을 따라 몸과 마음을 닦는 수신의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격몽요결>은 수신의 요체로서 조선시대 후기 일반 백성들의 교육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격몽요결>은 지금 읽어도 제사를 지내는 부분 등 몇 부분만 제외하면 그대로 따라 공부를 해도 좋을 만큼 교육지침서로서는 뛰어난 책이라 할 수 있다.

* * *

신사임당은 유가의 모든 경서에 통탈했었지만 특히 <논어>를 좋아했다. 그것은 <논어>가 '우주 최고의 책'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4서 5경’ 중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 책이기도 하지만 신사임당이 좋아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신사임당이 보기에 <논어>는 ‘인간 공자’의 진면목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는 '공자의 언행록'이면서도 대단히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책이란 점 때문이었다. <논어>에 등장하는 공자는 위압적인 스승이 아니라 전편에 걸쳐서 제자들이나 다른 사람들과 적극적이면서 부드러운 대화를 나누는 개방적 인물이다. <논어>에 나오는 공자의 말씀은 어떤 주제를 다루든 교조적 강설이 아니라 생생하게 들려오는 공자의 살아 있는 목소리다. 그는 상당히 합리적이면서 논리적이고 또한 지적이다. 김영수는 <현자들의 평생공부법>에서 교육자 공자를 이렇게 평가하고 있다.

공자는 중국 역사상 공부법 이론에 관해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구체적인 방법론과 실천론을 제시한 인물이다. 그의 공부법을 그가 살았던 시대적 한계를 감안해 본다면 놀라우리만치 합리적이고 과학적이며 또 신선하다. 좋아서 즐겁게 하라는 공부의 심리적 기본을 언급한 대목에서는 절로 감탄사가 나온다. 복습의 중요성과 응용을 강조한 것 역시 오늘날 공부법에 비해 손색이 없으며, 특히 공부와 사유, 공부와 실천의 결합을 역설한 것은 인성 교육이란 면에서 대단히 중요한 지적이다. 가히 공부법의 원조라고 할 만하다.

여성으로서 신사임당이 공자의 <논어>를 애독했던 이유도 편협하지 않은 그 합리성이 마음에 들어서였을 것이다. 신사임당은 『논어』야말로 내 일생을 관통하는 책이라고 생각했다.
율곡이 13세에 초시(初試) 장원을 하자 신사임당을 날아갈 듯이 기뻤다. 남편 이원수는 고거 공부를 팽개친 지 이미 오래고, 장남 선은 25세가 되었으나 아직 이렇다 할 가능성이 없어 보였는데 어린 율곡이 덜컥 장원을 했으니 그럴만도 했다. 그녀는 진작부터 신동 소리를 듣고 있던 율곡이 훗날 큰 인물이 될 것을 확신했고, 그래서 명재상 조보의 이야기를 꺼낸 것이었다. 하지만 신사임당은 현명한 어머니답게 차분한 어조로 율곡에게 물었다.
"아들아, 반부논어(半部論語)의 고사를 아느냐?"
어린 율곡으로서는 경전 공부는 열심히 했지만 그밖의 고사에 대해서는 별로 아는 것이 없어서 어머니를 쳐다보기만 했다. 그러자 어머니가 설명했다.
"반부논어란 '반 권의 <논어>'라는 뜻으로, 자신의 지식이 부족하다는 것을 겸허하게 인정하면서 배움의 중요성을 비유한 말이다."
이 말을 만들어낸 사람이 바로 송나라를 세우는 데 큰 공을 세운 승상 조보(趙普)였다. 그녀는 아들 율곡에게 송나라 태조 조광윤을 보좌하여 송나라를 세우고 송나라 300년의 기반을 닦은 승상 조보의 일화를 들려주었다.
송 태조 조광윤이 죽고 2대 황제 태종이 즉위하자 어떤 이가 조보는 겨우 <논어>밖에 읽지 못해서 큰일을 맡기기 어렵다고 험담했다. 그는 어릴 때부터 태조를 돕느라 싸움터에만 나가 있어서 글공부를 제대로 못했던 때문이었다. 그러자 조보는 태종에게 이렇게 아뢨다.
"신은 논어 한 부를 가지고 있습니다. 평생에 아는 것은 논어밖에 없사오나 그 반 권으로 선대 황제를 도와 천하를 평정했으며, 나머지 반 권으로 폐하를 도와 천하를 안정시켔나이다."
과연 조보는 태종을 도와 나라를 태평성대로 이끌었다. 조보가 죽은 뒤 그의 책 상자를 열어 보니 과연 <논어>만 들어 있었다. 남송 때 시인 나대경(羅大經)이 지은 수필집 <학림옥로(鶴林玉露)>에 실린 이야기다.
신사임당은 이 고사를 아들에게 들려줌으로서 어린 아들이 명재상의 꿈을 갖게 되기를 빌었던 것일까? 그만큼 <논어>라는 경전에 심취되어 있어서였을까?
가금현 기자 ggh7000@hanmail.net
가금현 기자 입니다.
긍정적인 사고로 의리를 지키며 살고싶다.
술은 웃음소리가 밖에까지 들리도록 마셔라!
내가 그자리에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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