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 시대와 체면의 덫

가재산의 삶의 이야기
고령화 시대와 체면의 덫
  • 입력 : 2021. 05.09(일) 17:53
  • 가금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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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재산의 삶의 이야기/CTN]강연100℃는 일요일 저녁 KBS가 골든타임에 방영한 인기 프로그램이었다.

시청자들은 출연진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으며 눈물 짓고, 때로는 자기를 되돌아보기도 하면서 새로운 용기와 희망을 갖는 시간이었다.

어느 날 우연히 본 프로가 '체면이 밥 먹여주나?'였다.

지하철 택배 기사 일을 하고 있는 팔순이 넘은 김명해 박사가 주인공이었다. 100세 시대에 현역으로 살아가는 비법이 바로 저거다 싶어 그분을 직접 만나 보기로 했다.

호기심이 많은 나는 집요하게 방송국 담당 PD를 통해 전화번호를 알아내, 일주일 뒤 점심 약속을 했다.

내가 회장으로 있는 2060 트레킹 클럽에 특별 강사로 모실 아량이었다.

'2060 트레킹 클럽'은 100세 시대에 20대도 경제수명 60년을 위해 미리 준비하고, 60대도 20년은 더 활동해야 하는데 오래 일하려면 건강이 최고라는 생각으로 시작한 이래 500여 명이 가입한 단체다.

그분을 특별히 모신 날 나는 20여명의 회원들과 서울 둘레길 3코스 트레킹을 마치고 올림픽공원 옆에 있는 조그만 식당에서 뵙고 방송에서 못다한 뒷이야기까지 생생하게 직접 들었다.

그분은 넉넉치 못한 형편이지만 서울대 사범대학교에 진학한 그는 동대문시장에서 장사하며 대학교를 마쳤다.

졸업 후 교사가 되었고, 평탄하게 교직생활을 이어간 그는 늦깎기로 대학원 공부를 시작해 꿈꾸어 왔던 박사학위까지 취득했다.

고등학교 교감을 거쳐 장학관으로 퇴직한 후에도 10년간 대학 강사를 하며 가르침의 길을 걸어오다 72세에 퇴직했다.

그후 편히 쉬면서 여행도 실컷 해보고, 운동도 열심히 했지만 오히려 체중은 늘고 건강은 나빠졌다.

이건 아니다 싶어 다시 일하기로 마음먹었으나 막상 그 나이에 마땅히 할 일이 없었다.

그러던 중 교사 재직시 미국에 연수가서 생소한 사람들을 목격했던 일이 갑자기 떠올랐다.

그들은 교직에서 은퇴하고 스쿨버스 기사로 일하는 사람, 교장에서 은퇴 후 그 학교에서 경비원을 지내던 용감한 사람들이었다.

그 생각을 하니 번뜩 새로운 생각에 불을 붙였다. 과거에 교감이고 교수, 그리고 박사라는 게 지금 이마당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체면이라는 굴레에서 과감하게 벗어나기로 했다.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열정과 정신력으로 구직에 힘쓰던 중 구청에 부탁하여 지하철 택배 일을 하게 되었다.

노인 우대로 지하철 승차는 무료였으나 77세에 시작한 지하철 택배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택배 물건을 잃어버린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고, 주소를 잘못 알고 길을 헤매기도 여러 번이었다. 또한 고객이 주소를 잘못 표기하여 난감할 때도 수없이 많았다.

그럴 때마다 그는 "참자, 무조건 참자, 화를 내지 말자"라는 주문을 걸며 묵묵히 일을 수행하여 그 회사에서 가장 우수한 사원이 되어 남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늘그막에 왜 힘든 일을 하냐며 가족들의 반대도 있었지만 일을 할수록 건강해지고 마음도 젊어져 인생의 또 다른 즐거움을 알게 됐다. 그러면서 그는 평소 좋아하는 사무엘 울만의 청춘의 시구를 인용했다.

"청춘은 인생의 어느 기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를 말한다. 그것은 장밋빛 용모, 앵두 같은 입술, 나긋나긋한 자태가 아니라 강인한 의지, 풍부한 상상력, 불타는 열정을 말한다!"

그분은 여든이 넘은 나이에 허리도 꼿꼿하고 건강했다. 식사 후 멤버들과 올림픽 공원을 한 시간 넘게 같이 걸으면서 못다한 이야기를 하다가 다시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다.

그분의 많은 경험담 중 핵심은 나이 들어서 가장 먼저 버려야할 게 체면이라는 것이었다. 이 체면이 자신을 속박하고 행동을 제한하며 많은 사람들이 이 체면이라는 덫에 갇혀 살고 있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에 여러 실버타운이 있다. 그 중에서도 상위층들이 모여 사는 유명한 곳으로 건국대학에서 운영하는 'Classic 500'과 삼성에서 운영하는 '노블카운티'를 꼽는다. 우연하게 두 곳의 원장들한테 직접 전해들은 공통된 이야기가 있다.

한 번 국무총리는 영원한 국무총리요, 장관도 영원한 장관님 행세를 한다. 심지어 그들 부인까지도 그런 망상에 젖어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나이가 들어 실버타운에 기거하면서도 살아가는 방식은 여전히 20~30십년 전 최고 대우를 받던 옛시절 추억 속에 갇혀 산다. 이런 삶은 자신은 물론 남한테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심한 불편을 끼친다.

대개 사람들은 '지금의 나 그리고 개성적인 나'를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남에게 보여지고 평가받는 내가 기준이 되고 있다.

사실 우리의 체면 문화는 명분을 우선하기 때문에 그 명분을 살리기 위해 실리까지 버린다.

그 예로 딸을 시집보낼 때 가진 것이 없어도 남의 이목 때문에 빚을 내서라도 혼수를 장만해야 한다.

그 후 그 빚 때문에 받는 고통을 뻔히 알면서도 그렇게들 한다.

우리 사회의 이런 오래된 관행은 하루 이틀에 정착된 것은 아니다.

특히 관혼상제에서 더욱 그렇다. 유교는 우리나라에 크게 영향을 끼쳤는데 도리를 근간으로 하고 있다.

그 도리의 중심은 남을 대하는 태도이며 거기엔 자기가 받는 평가 때문에 자기를 감추고 삼가는 마음이 우선한다.

이러한 정서는 미풍양속을 지키고 억제와 행동의 신중성을 높여주는 경우가 많지만, 때로는 우리들에게 행동의 변화를 억제하고 변화를 구속하는 경우가 많다.

지금은 디지털 정보화 시대요, 100세 시대다. 2019년에 65세 이상이 8백만 명을 넘을 정도로 세계최고의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이제 체면에 대해서 생각을 달리해야 할 때다.

지나친 경쟁심리도 한국인 특유의 체면문화와 연관이 깊다.

이를테면 OECD 회원국 가운데 계속 1위를 차지하고 있는 한국의 자살률과 지나친 교육열과 성형 광풍 등은 한국인 특유의 체면 문화에 원인이 있다고 지적한다.

옛부터 양반의 고장이라 일컫는 충남지역의 자살률이 다른 지역에 비해 높다.

그 이유는 그들이 갖는 지역의 특수성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그들은 자존심이 강해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고 남에게 피해주길 싫어해 어려워도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 경향이 많다. 가부장적 성향이나 '체면을 중요시하는 양반문화'가 가져다주는 병폐이기도 하다.

고령화 시대에 나이 들어서도 직업이 있다면 더할 나위 좋겠지만 수입에 관계없이 할 일이 있다면 행복한 노년을 지낼 수 있다. 무엇보다 100세 시대에 최고의 대응은 현역으로 사는 것이다. 여기엔 체면을 집어 던질 용기가 먼저 필요하다.

가금현 기자 ggh70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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