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반전 삶을 안내해 준 이와다 선생님

가재산의 삶의 이야기
후반전 삶을 안내해 준 이와다 선생님
- 한류경영연구원장 가재산
  • 입력 : 2021. 08.17(화) 11:20
  • 가금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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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경영연구원장 가재산
[가재산의 삶의 이야기/CTN]"가상(가형) 미안해요. 조금만 더 기다려 줘요!"

"제가 급한 문제가 생겼어요. 이유는 가서 말씀드릴께요"
약속 시간보다 30분 늦게 도착한 이와다 선생님이 급히 내가 기다리던 호텔로비로 들어섰다.
"정말 미안해요"
"그런데 급한일이 잘 해결되셨어요?"
이와다 선생님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약속 시간에 늦은 내막을 실토했다.

"사실은 제가 한 달 전에 대장암 수술을 했거든요. 그후 한 달 간 외출 금지령이 떨어졌어요. 오늘이 3주째인데 서울에서 오랜만에 동경에 왔다는 가상의 전화를 받고 아내 몰래 나오다가 딱 걸렸지 뭐에요…"

선생님을 마지막으로 뵌 것은 3년 전이었다.

그동안 한일 외교갈등에다 코로나까지 겹쳐 일본 방문을 못했기 때문이다. 자초지종을 설명하시는 선생님의 얼굴에는 정말 미안해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내 후반전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게 한 선생님은 이렇게 나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남달랐다.

내 인생의 멘토라고나 할까? 내가 퇴직 후 후반전 삶에 꼭 닮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이와다 선생님이었다. 내가 삼성자동차 재직 시 인사, 교육담당 임원을 맡았지만 자동차 경험은 전무한 상태였다.

자동차 판매에부터 수리 절차까지 모든 교육을 새로 해야하기 때문에 일본에서 경험 많은 사람 중 외부 고문으로 몇 분 영입했다. 그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분은 내가 고문으로 직접 모셨던 이와다(岩田) 선생님이셨다.

선생님은 일본 혼다 자동차에서 정년 퇴직 후 2년간 삼성자동차 고문으로 있으면서 회사 설립 초기부터 혼다 자동차 교육시스템 전체를 몽땅 다 전수해 주셨다. 기술제휴사인 닛산 자동차의 기본적인 내용은 있다지만 제로에서 출범하는 회사의 교육시스템을 기초부터 세워주시고 첫차가 나와서 시판될 때까지 적극적으로 도와주셨다.

불행하게도 신차가 나오자 마자 IMF가 터졌다.

빅딜로 인해 삼성자동차가 대우차에 합병되자마자 파산하게 되었고 결국 르노 자동차로 넘어가고 말았다. 그로 인해 나도 회사를 그만 두었지만 개인적인 친분을 계속 유지하면서 일본에 갈 때마다 선생님을 꼭 찾아 뵙곤 했다.

그분은 일본의 혼다(Honda)자동차 창업자이자 마쓰시다 고노스케 회장과 함께 '경영의 신'이라 불리던 혼다 소이치로 회장의 몇 안 되는 문하생(門下生)이었다. 영업 지점장, 판매회사의 사장, 그리고 연수원에도 15년 근무했다.

예순 정년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일본의 이토(伊騰)에 있는 혼다 종합연수원 원장이었다. 그 당시 일본 회사에 지인으로부터 이분이 곧 정년 퇴직하실 분이라는 소식을 듣고 곧바로 일본으로 날라 가 만나게 되었다.

첫인상부터 소탈한 성품에 인자한 분이었다. 막상 가보니 별도의 연수원장실 조차도 없었고 직원들과 똑 같은 책상에서 나를 맞이해 준 것부터 인상적이었다. 사실 나는 회사 업무를 떠나 개인적으로 그분한테 무척 많은 것을 배웠다.

퇴직 후 제2의 인생을 사는 데 그분의 삶과 태도가 내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한 마디로 나의 벤치마킹 대상이자 훌륭한 멘토였다. 나는 지금까지 이분의 살아온 길을 비슷하게 일부라도 닮아보려고 나름 노력하고 있다.

그의 가장 감명 깊었던 것은 철저한 시간 활용법이었다. 그분은 조그마한 수첩에 1년 동안의 스케줄을 깨알 같은 글씨로 기록하여 관리했다. 은퇴 이후에도 주어진 긴 시간을 자신을 위한 일, 계속 돈 버는 일, 그리고 타인을 위한 봉사로 3 등분해 사용하고 있었다. 이른바 황금비율인 3:3:3법을 실천하고 있었다.

첫 번째 3은 자신의 건강과 취미생활 즉 자신만을 위한 시간이었다. 새벽 다섯시에 일어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한 시간 넘게 빠른 걸음으로 공원을 산책하며 체력을 단련했다. 산책 나갈 때도 변화를 주기 위해 모자, 스카프, 위아래 운동복을 매일 바꾸어 입었다. 서른 한 벌을 따로 준비하여 벽에 걸어 놓고 늘 다른 옷으로 바꾸어 입고 운동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2002년 월드컵이 지나고 그해 일본에 갔을 때 붉은 악마들의 'The RED'라는 글씨가 새겨진 빨간 티셔츠를 한 벌 드렸더니 애들처럼 좋아하시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래서인지 그 당시 일흔을 넘긴 나이인데도 오십대처럼 건강해 보이고, 골프 실력 또한 싱글을 유지하고 있었다. 좋아하는 취미로는 집에 도자기 굽는 자그마한 요(窯)까지 준비하고 도자기를 만드는 일를 즐기셨다.

두 번째 3은 나이가 들더라도 어떤 일이든 계속하고 가능하다면 돈버는 일도 지속하자는 것이었다. 삼성자동차 고문을 그만둔 이후 90세가 다된 현재까지도 ‘선샤인(Sun shine)이라는 작은 컨설팅 회사를 설립하여 대표 컨설턴트로 일하신다. 전국을 돌며 강의와 기업체 자문 활동도 활발하게 하고 있다. 물론 사무직원은 별도 없이 사모님이 다 도와준다.

마지막 3은 남을 돕는 봉사활동에 투자하는 시간이다. 주로 고향에 내려가 직접 몸으로, 때로는 금전적 지원으로 봉사를 실천하면서 멋지고도 풍요로운 인생을 즐기며 살고 있다.

참으로 후반전의 인생설계가 멋진 분이다. 그래서 일본에 들를 때마다 꼭 선생님을 만나 뵙고 소주 한잔 기울이면서 그분의 인생 경험을 듣곤 했다. 그후 나는 333의 원칙을 그대로 나한테 적용하기 시작했다.

40대에 퇴직한 이후 나의 삶은 그럭저럭 333원칙과 닮은 꼴로 가고자 20년 넘게 노력했고 앞으로도 그렇게 해볼 생각이다.

나는 자신을 위한 투자를 퇴직 이후 대폭 늘렸다. 여러 곳의 대학원도 다녔고, 체력 보강을 위해 트레킹 클럽을 만들어 500여명이 모일 정도로 걷기에 흠뻑 빠지기도 했다.

더욱 의미 있는 일은 원래 열 권만 쓰기로 마음먹었던 책쓰기가 이제 30여 권에 이른다.

두번째로 돈버는 일에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삼성에서 배운 인사교육관련 실무를 중소기업에 전파하려고 나이 오십에 중앙일보와 JOINS HR을 창업했다. 그리고 10년 전 예순이 지난 나이에 피플스그룹을 세워 20여 년 동안 컨설팅과 교육사업을 했고, 앞으로도 한류경영연구원을 통해 계속 일을 놓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처럼 앞의 두 가지 방향에는 크게 차질이 없었는데 가장 어려웠던 게 세 번째 타인을 위한 일이었다. 시간이 없고 여유가 없다는 핑계가 늘 장애였다. 그 방안으로 1억 원을 기부하면 된다는 아너스 클럽도 생각했었다.

드디어 2년 전에 미얀마 학생 100명에게 장학금 주는 일을 시작했다. '세상은 인간이 바꾸지만 인간은 교육을 통해 바뀐다'는 생각으로 학생들에게 장학금 주는 것뿐만 아니라 청소년들에게 꿈과 도전을 심어주는 정신 교육을 목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과거 미얀마는 아시아 3대강국이었고 우리나라를 6.25때 우리에게 쌀을 지원한 나라인데 62년 군부 쿠테타로 사회주의를 도입한 이래 지금은 세계 최빈국으로 전락했다. 이제 반대로 도움이 필요한 필요한 나라가 되었다.

또 한가지는 책쓰고 싶은 시니어들을 위해 출간이 될 때까지 작가와 출판사들이 도와주는 '핸드폰 책쓰기 코칭협회'를 만들어 활약하고 있다. 시니어들이 간절히 소망했던 책이 세상에 나올 때면 비록 내게 이렇다할 수입이 없어도 내 책이 출간된 것만큼이나 기쁘고 신바람이 난다.

나이들어 하는 일을 세가지로 분류하면 '일은 좋아하는 일, 잘 할 수 있는 일, 그리고 의미 있는 일'로 나눌 수 있다.

취미생활처럼 좋아하는 일은 주로 자신을 위한 일이라서 자기가 하는 일이 즐겁기에 피곤하지도 않고 재미가 있다. 잘 할 수 있는 일은 전문성을 가지고 능력발휘를 통해 계속 돈 버는 일에 유리하다.

그러나 의미 있는 일은 좀 다르다. 의미 있는 일은 오히려 돈을 써야 하고 때로는 무척 힘이 들 경우도 많다. 그러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면 열정이 생기며, 하고 나면 도리어 자기가 행복해진다.

타인을 위한 봉사요 기부는 묘하게도 자기가 더 행복을 느끼는 행위라는 것을 몸소 체험하고 있다.

이제 첫째, 둘째 과제는 어느 정도 이루었으니 세 번째 과제에 집중하며 삶의 무게추를 옮기는 데 주력하고자 한다. 코로나가 물러가면 곧바로 내 후반전 삶의 길을 안내해 주신 이와다 선생님을 뵈러 동경으로 달려가야겠다.
가금현 기자 ggh7000@hanmail.net
가금현 기자 입니다.
긍정적인 사고로 의리를 지키며 살고싶다.
술은 웃음소리가 밖에까지 들리도록 마셔라!
내가 그자리에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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